"말 잘해야 뜬다"스피치 강좌 붐…"발음-자세-표정 하나로"

  • 입력 2001년 7월 1일 19시 31분


<<“전국적으로 구름이 많이 끼겠고, 소나기가 오는 곳이…. 언니, 머리했어? 너무 예쁘다.” 25일 오후 6시경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한 스피치 강좌. 언론사 입사를 꿈꾸는 대학생 10여명이 삼삼오오 모여 진지한 표정으로 취업정보를 나누고 있었다. 또박또박 뉴스기사를 읽어 내려가는 학생, 소파에 파묻혀 ‘3분 스피치’를 구상하는 학생 등 모습도 가지가지.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어. 그러니까 목소리가 떨리고 부자연스럽게 보이잖아.” 스피치 강사의 따끔한 충고 한마디. 학생들은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고 입을 모았다. 스피치의 시대. 하고 싶은 말을 얼마나 간결하게 효과적으로 남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이 된 지 오래다. 각종 스피치 강좌에는 취업 준비생에서부터 기업의 최고경영자까지 ‘말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스피치시대 정착〓주택가에 흔하던 웅변학원이 90년대 중반부터 하나 둘 간판을 내리는 대신, 학원 또는 대학가에 스피치 강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의 ‘스피치 토론 전문과정’. 수강생 대부분은 고급 공무원과 기업의 최고경영자, 정치인 등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고위층’이다. “옛날처럼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다간 무능한 상급자로 찍힐 뿐 업무에 도움이 안된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

이 과정에서 스피치를 하는데 주어지는 시간은 단 7분. 미국 대학 수업에서도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발표와 질의응답을 합쳐 10분을 넘지 않는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게 일반적인 추세라고 전공학자들은 말한다.

또 정보화 물결을 반영해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피치 강좌에서는 파워포인트 등을 이용한 프레젠테이션 강좌도 점차 늘고 있다.

최근에는 사설학원과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도 ‘성공화술’ ‘화술특강’ ‘파워스피치’ ‘고품격스피치’ 등의 이름으로 직장인과 주부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또 서울 서초, 강남, 송파구에서는 ‘어린이 스피치’ ‘독서 토론교실’ ‘어린이 아나운서 MC 과정’ 등의 강좌도 인기를 얻고 있다.

스피치 강사 이선미씨(이화여대 강사)는 “최근에는 회사원뿐만 아니라, 포교활동을 하는 스님들도 있을 정도로 수강생층이 넓어졌다”며 “선거철이 되면 ‘스피치 벤처사업’을 해보자는 제의도 받는다”고 말했다.

▽자신감이 생겨요〓스피치 강좌 수강생의 한결같은 반응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할 때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

“그동안 ‘문어체’와 ‘복문’에 중독돼 살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말에 힘도 없었지요. 입사준비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수강생 정해현씨(22·이화여대 4학년)는 “‘3분 스피치’를 반복하다 보면 생각이 정돈된다”며 “강의시간에 발표할 때도 누구든 이해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스피치 인프라 필요〓초 중등학교에 전문 스피치교사가 따로 있고 대학에서도 스피치가 교양필수 과목으로 지정돼 있는 미국에 비하면 국내 스피치교육은 아직 걸음마 수준. 기업의 단체교육 등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스튜디오 등 전문시설을 갖춘 스피치교육장이나 전문강사는 크게 부족하다.

경희대 허경호교수(언론정보학)는 “과거 유행하던 웅변은 스피치의 한 부분일 뿐”이라며 “독백, 대화, 토론, 프리젠테이션 등 상황에 걸맞은 화법을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스피치 과정

“훌륭한 스피치는 발음, 자세, 표정, 몸동작 등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입니다.”

96년부터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스피치 토론 전문과정’을 지도하고 있는 경희대 허경호(許耕豪)교수.

그는 ‘스피치 토론 전문과정’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우선 ‘진단’을 실시한다. 발음에서부터 표정, 시선 등 말할 때 한 사람의 전체적인 모습을 관찰하는 것. 수십년간 몸에 밴 ‘나쁜 습관’을 찾아낸 뒤 ‘처방’을 내린다.

기본과정은 발음 및 발성 훈련이다. 표준어와 구어체를 사용하는 것은 훌륭한 스피치의 필수 조건. 이어 복식호흡을 하면서 문장을 읽는 연습을 한다. 높낮이가 없거나 강약을 조절하지 않고 ‘밋밋하게’ 읽으면 즉시 지적을 당한다. 상대방을 감화시키기 위해서는 말에 ‘생기’와 ‘윤기’가 흘러야 하기 때문.

기본과정이 끝나면 실전 훈련에 들어간다. 방송인이 장단음과 고저 훈련을 담당하고, 성우는 목소리에 감정을 실어내는 방법을 전수한다. 또 연극배우를 초빙해 말할 때 제스처와 표정, 시선 등을 가르친다.

마지막 단계는 토론과 연설 등 실전 스피치. 자신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정보를 배열하는 방법에서부터 남의 의견을 옹호하거나 반박하는 기법을 훈련한다.

이 모든 과정은 대학원 내에 새로 마련된 ‘스피치 아트 클리닉’에서 진행된다. 3면이 거울로 된 방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말하는 훈련을 할 수 있는 게 특징. 또 모든 과정을 비디오로 녹화해 서로의 장단점을 검토하는 등 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스튜디오가 마련돼 있다.

허교수는 “가을 학기부터 회사원과 주부 등 일반인에게 개방할 예정”이라며 “연차적으로 초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차지완기자>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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