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성철스님 기념관-사찰 준공법회

  • 입력 2001년 3월 22일 18시 50분


◇성철 큰스님 학교성적은 어땠을까-경남 산청에 생가 복원, 俗人때 유품등도 전시

성철(性徹·1912∼1993)스님이 태어난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에 생가가 복원되고, 이 곳에 우리와 똑같은 속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영원한 진리와 행복을 찾고자 수행의 길을 걸었던 스님의 유품이 전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성철스님의 학교성적은 어떠했을까? 그가 다닌 단성소학교의 성적표에는 1학년 42명 중 7등, 2학년 49명 중 8등 등의 성적이 기록돼 있다. 졸업할 때까지 10등 밖으로 벗어나 본 적은 없지만 탁월한 성적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20세때인 1932년 직접 손으로 기록한 이영주(李英柱·속명) 서적기라는 메모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루소의 민약론, 마르크스의 자본론, 기독교의 신구약성서, 하이네 시집, 맹자 중용 대학 등 유교의 경전, 채근담 근사록 등의 목록이 등장한다. 소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사람이 무슨 생각으로 이토록 다양한 동서양의 고전에 관심을 가졌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가 읽던 책 남화경(南華經)에는 ‘return to nature(자연으로 돌아가라)’란 낙서가,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에는 ‘from everlasting to everlasting(영원에서 영원으로)’이란 낙서가 보인다. 영원한 가치에 대한 그의 관심이 손에 잡힐 듯하다.

해인사 백련암에 주석해 ‘가야산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엄했던 스님의 따뜻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글도 있다.

“내가 세상에 어떠케(어떻게의 오기) 보일런지 모르나 그러나 나에게는 내가 바다가(바닷가의 오기)에서 놀며 때때로 미끄러운 조각돌이나 보다 아름다운 조개껍질을 찾으며 스스로 즐기는 오직 한 소년같이 생각된다. 한편 크나큰 진리의 바다는 전혀 발견되지 않은채 나의 앞에 노여있다(놓여있다의 오기). 아이작 뉴튼 경”

생가 앞에는 ‘시간 밖의 절’이라는 의미를 지닌 겁외사(劫外寺)도 세워졌다. 30일 오전 11시 생가와 사찰 준공을 기념하는 법회가 열리고 유품전시장도 문을 연다. 법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정대(正大)스님과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가 정대스님 설화사건 이후 처음 한 자리에서 만나 화해를 모색한다.

<산청〓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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