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꽃, 강에 지다…'

  • 입력 2001년 2월 9일 18시 47분


“논개 할머니는 단순한 기생이 아니라 사실상 사대부 정부인이었습니다.”

역사 소설 ‘꽃, 강에 지다―정부인 논개 신안주씨전’의 저자 최낙건씨(63)는 논개가 당시 진주성을 지키던 최경회 경상우병사의 정부인이었음을 힘주어 강조했다.

“당시 왜장과 함께 남강에 떨어진 논개의 시신은 하류의 한 여울에서 수습됐습니다. 의병들은 논개의 시신을 수습해 최경회의 시신과 함께 현재 경남 함양군 서상면에 묻었지요. 한여름에 300리 길을 옮긴 것입니다. 논개가 아무리 의로운 일을 했다고 해도 천한 기생 신분이었으면 이렇게 소중하게 모셨을리 없지요.”

유생의 딸로 태어난 논개는 집안의 몰락으로 관노(官奴)가 되면서 최경회와 인연을 맺었고 최경회의 부인이 숨진 뒤 경상우병영의 내아(內衙)를 관장한 실질적인 정부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최씨는 논개를 다룬 역사 소설을 썼지만 정작 역사가나 소설가가 아닌 전직 군수이다. 그가 논개를 ‘할머니’로 부를 정도로 질긴 인연을 맺게 된 것은 88년 함양 군수로 부임하면서였다.

당시 그는 서상면에 살던 논개 후손의 손에 이끌려 구전으로만 전해질 뿐 상석도 없이 방치되고 있던 논개의 묘를 찾게 된다. 그는 이 무덤을 사적(史蹟)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논개의 역사적 실체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됐다.

이후 ‘부계기문’ ‘대동기문’ 등 논개와 관련된 역사 자료를 책장 가득 모으기 시작했고 논개가 떨어져 죽은 의암, 무계나루, 지수목, 와룡정 등 논개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을 수십 차례 답사해 현지인들의 구전을 채취했다. 그는 “논개 할머니가 마치 나를 이끌듯이 자료가 있는 곳은 다 가보게 됐다”고 말했다.

96년 공직을 마감한 뒤 본격적으로 소설 작업에 착수했다. 새로운 자료를 찾으면 보강을 거듭하는 꾸준한 작업을 거쳐 5년만에 책을 출간한 것.

“소설이긴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인명 지명은 물론 구체적인 사건은 99% 역사적 기록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멋대로 지어낸 허구는 거의 없어요.”

그가 늘그막에 논개에 푹 빠진 이유는 뭘까?

“논개 할머니는 순수한 열정과 빛나는 지혜를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기생이라는 잘못된 굴레 때문에 야사(野史)에서만 다뤄지는 할머니가 정사(正史)에서 제대로 대접받는 것을 바랄 뿐입니다.”그는 곧 논개의 묘를 찾을 예정이다. “묘소에서 제가 책을 썼다고 고유제(告由祭)를 지낼 겁니다. 혹시 잘못된 게 있어도 용서해달라고….”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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