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책/저자는 말한다]한형조 '왜 동양철학인가'

  • 입력 2000년 12월 22일 19시 12분


◇"초월적 정신주의로 풀어보자"

동아시아의 철학적 전망을 탐색하는데 몰두해온 한형조 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왜 동양철학인가’를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불교 유교 이기론(理氣論) 노장사상 법가 등을 두루 탐색하면서 동양적 사유가 가진 ‘근대 극복’의 힘을 높게 평가했다.

“예전에는 동양철학의 전근대성이 강조됐죠. 그 뒤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유교를 비롯한 동양 전통을 근대와 접목시키는 것이 논의의 초점이 됐죠.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근대에 대한 반성과 비판’에 오늘날 유교의 핵심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욕망의 모든 것을 인정하면서 인간의 초월적 본성에 귀기울이지 않는 근현대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욕망에 대한 가치평가를 적극적으로 행한 동양철학이야말로 미래의 사유체계가 될 수 있다고 그는 전망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동양사상을 논하는 이들이 사소한 차이를 따지는 미시적 전망에 너무 몰두해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옛 사람 하나를 놓고 율곡학파니 퇴계학파니 꼼꼼히 따지고는 하죠. 그렇지만 지금은 사유의 공통점을 논할 때입니다. 탈근대의 시선으로 볼 때 유교와 불교의 차이도 작다 할 수 있어요. 물질충족의 욕구를 넘어서는 초월적 정신주의라는 점에서 이들은 같은 지평을 공유한다고 봅니다.”

‘방법론적’ 측면에서 그가 철학에 사용하는 언어의 갱신을 촉구한 점에도 눈길이 간다.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성서의 텍스트를 민중의 언어로 번역하기를 금지했던 중세 수도사들이 있었죠. 오늘날에도 동양철학에 대한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비전(秘傳)’의 어휘들이 판을 칩니다. 수수께끼의 어휘들을 남겨두지 않고 모든 개념을 철저히 소화해 번역하는 서구인들의 책에서 큰 도움을 얻을 정도니까요. 우리 학계도 옛 텍스트가 가진 단단한 개념의 껍질부터 녹여내야 합니다.”

텍스트를 철저히 타자화(他者化)해 바라보기를 요구하는 그는 스스로 더욱 엄밀한 ‘타자의 시선’을 얻기 위해 이달부터 1년간 미 미시건대에서 방문교수로 활동 중이다. 그는 22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국내에서 출간된 자신의 저서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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