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선인의 얼이 서린 '묵향의 세계'

  • 입력 2000년 12월 19일 19시 28분


연말연시를 맞아 우리 전통 서화(書畵)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전시회들이 풍성하게 열린다.

서울 세종로 국립중앙박물관(02―398―5103)에서는 내년 1월7일까지 고 유강열(劉康烈·1920∼76) 홍익대 미대 교수의 기증유물전이 열린다. 기증유물 중에는 특히 여지껏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의 작품으로 전칭(傳稱)됐던 ‘우중신폭(雨中新瀑)’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진품으로 확인돼 ‘전(傳)’자를 떼고 전시돼 의미가 깊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원복 미술부장은 “한 여름 비온 뒤 폭포를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 속에 겸재 특유의 간략한 화면구성, 담백한 묵번짐, 시적 정취를 볼 수 있어 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90년대 들어 민화붐이 몰아치기 전 고인에 의해 수집된 민화풍의 ‘모란도(牡丹圖)’ ‘화조도(花鳥圖)’ 등도 기증유물 중 백미로 꼽힌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관(02―580―1300)에서는 29일부터 2월11일까지 ‘한국서예 2000년전’이 열린다. 88년 서예관 개관이후 18회에 걸쳐 개최해온 ‘한국 서예사 특별전’을 결산하는 이 전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후기까지를 모두 8기로 나눠 각 시기별 대표작을 엄선해 보여준다.

이 가운데 다산 정약용(茶山 鄭若鏞)의 ‘증원필(贈元弼)’시첩, 봉래 양사언(蓬萊 楊士彦)의 ‘초서오언시(草書五言詩)’ 두루말이,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와 ‘칠언시(七言詩)’는 사실상 처음 공개되는 명작들이다.

‘춘야연도리원서’는 전형적인 송설체로 쓰여진 것으로 안평대군의 글씨 중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길이 3m에 이르는 ‘초서오언시’ 두루말이는 조선시대 초서의 기준이 될 만한 작품이고, ‘증원필’시첩은 간찰(簡札)만 집필하던 정약용의 유일한 시첩으로 꼽히게 됐다.

서울 인사동의 대표적 고화랑인 대림화랑(02―733―3788)은 화랑과 개인소장가들의 조선시대 미공개 작품 60여점을 모아 21∼29일 ‘조선시대 좋은 그림전’을 연다.

탄은 이정(灘隱 李霆·1541∼1622)과 수운 유덕장(峀雲 柳德章·1694∼1774)의 묵죽도(墨竹圖)는 ‘선비가 고기를 안먹어 몸이 여윈 것은 고칠 수 있지만 대나무를 멀리해 속되어진 것은 고칠 수 없다’는 묵죽송을 생각나게 하는 그림이다.

추사파 서화가였던 자하 신위(紫霞 申緯·1769∼1845)의 것으로 전해지는 작품은 문인화의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석파 이하응(石坡 李昰應·1820∼1898)의 석란도(石蘭圖) 쌍폭은 대원군의 정치적 야망을 보여주듯 기운이 넘치고, 석창 홍세섭(石窓 洪世燮·1832∼1884)의 까치와 해오라기 그림은 현대인의 눈으로도 아름답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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