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과 西의 벽을 넘어]東洋고전에서 심리학代案 모색

  • 입력 2000년 12월 17일 19시 48분


서강대 교양학부 조긍호(趙兢鎬·52) 교수는 펜으로 원고를 쓴다. 그가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 온 e메일을 읽어보는 정도다. 아직 운전면허도 없다. 그는 우리나라 심리학연구에 한 획을 긋는 업적으로 인정돼 1999년 학술원상을 받기까지 한 저서 ‘유학심리학’(나남출판·1998)의 서문 말미에 스스로를 ‘팔불출’이라며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책을 3년 전에 못해 준 결혼 20주년 기념 선물이라 여겨 작은 감동이라도 받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이 책에 주어질 모든 폄훼(貶毁·깎아 내려 헐뜯음)는 전적으로 필자의 몫이지만, 혹시라도 이 책으로 인해 얻어질 영광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녀의 몫이다.”

혼자서 지인들에게 물어가며 심리학의 눈으로 동양고전을 읽어 왔다는 그는 이제 학문적으로 외롭지 않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 이후 문화심리학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보편주의적 관점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의 관점이 받아들여지고 있고, ‘동양심리학’도 학계에서 외면하기 어려울 만큼의 학자군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동양심리학’의 역사도 짧지는 않다. 고인이 된 김성태 전 고려대교수, 조 교수의 스승인 정양은 전 서울대교수 등이 벌써 1970년대 초반 성리학의 심성론 인간론을 심리학적으로 조명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최근 동양심리학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조 교수의 입장은 동양고전에 대한 심리학적 독서를 통해 기존 심리학에 대한 하나의 대안 모색을 시도하는 것이다.

“제가 맹자 순자가 돼서 당시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현대심리학을 바라보면 현대심리학이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못 보는지 나타날 겁니다.”

조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맹자 순자 등 선진(先秦) 유학자들은 인간을 능동적 주체적 존재로 파악하고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태로 이해했다. 인간을 단지 환경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존재로만 파악해 온 서양심리학과 달리, 반성 능력을 가진 인간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고 능동적으로 이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또한 서양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사회적 특성을 도외시하고 지나치게 추상화된 원자적 개인을 상정해 왔지만, 선진 유학자들은 인간 존재를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파악한다. 실제 인간의 특성과 의미는 부자 군신 장유 부부 붕우 등의 관계 속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인간 행위의 규범은 바로 이런 관계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렇게 선진 유학의 체계로부터 도덕성에 주목하는 심리학,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역할 수행을 강조하는 심리학, 그리고 자기의 통제 과정을 강조하는 심리학 등 종래의 심리학과는 다른 심리학을 추구한다. 이제까지의 서양심리학에서 간과해 왔던 도덕적 주체와 무한한 가능성을 갖춘 ‘사회적 관계체(關係體)’로서의 인간을 다루는 것이다.

조 교수의 관심은 선진유학으로부터 송명(宋明)대 성리학과 조선유학으로 서서히 내려오고 있다. 이를 통해 뿌리깊은 유교적 전통을 가진 한국인에게 나타나는 사회행동의 심층적 특성을 밝혀 보겠다는 계획이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khc@donga.com

◆ 서강대 조긍호 교수 약력

△서울대 심리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박사

△전남대 심리학과 교수

△한국사회심리학회 회장

△현재 서강대 교양학부 교수

△저서로 ‘유학심리학 : 맹자·순

자편’ ‘불평등사상의 연구’(공

저) ‘심리학:인간의 이해’(공

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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