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곳에 사는가]남양주시 외부읍 거주 미술가 박수룡씨

  • 입력 2000년 11월 26일 18시 38분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월문리. 조그만 저수지와 야산이 있는 평범한시골 마을이다. 이 곳에 평면(서양화와 삽화)과 입체(조각)를 넘나들며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중견 미술가 박수룡(박수룡·46)씨가 산다. 해질 무렵 낙엽을 밟으며 집 앞 저수지를 향할 때 박씨는 늘 설렌다. 이웃집 두엄 냄새가 좋고 저수지에 비친 노을이 ‘야행성’인 그의 정신을 맑게 해주기 때문.

가족을 서울에 두고 혼자 산 지 10년. 외롭기도 하지만 이제 복잡한 서울살이는 생각도 할 수 없다. >>

"사람의 방해를 받고 않고 작품 활동을 하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시골의 편안한 정취를 느낄 수 있지요.”

90년 박씨는 서울 근교를 두 달 간 헤매다 이 곳에 작업실 겸 집을 지었다. 그의 뒤를 이어 조각가 양화선씨와 김승환씨, 서양화가 정복수씨가 월문리로 옮겨왔고 어느 새 미술가 35명이 모여 사는 미술인촌이 형성됐다.

박씨는 이곳에서 자연과 함께 지병 치료를 덤으로 얻었다.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던 불면증이 이사온 지 석달만에 사라진 것. 아련히 들리는 물 개구리 열차 소리가 자장가였다.

◇ "이곳엔 사계절이 있지요"

그는 서울에 갈 때 대문은 물론 현관문과 창문을 열어 놓는다. 앞 집 외양간에서 풍겨 오는 소똥 냄새를 집안으로 들이기 위해서다. “메주와 된장국, 두엄, 소똥의 색깔에는 향기가 배어 있습니다. 그 속에 우리의 감성이 녹아 있지요.”

박씨는 논두렁에서 동네 할머니가 멀찍이 보이면 반가우면서도 도망칠 궁리를 한다. 마주친 할머니가 이야기 보따리를 풀면 30분은 훌쩍 넘어가기 때문이다. 오가며 만난 사람끼리 별스럽지 않은 이야기로 30분을 넘기는 여유가 ‘한 템포 느린’ 시골 모습이다.

요즘 그의 작품은 모두 갈색이다. 겨울 시골 들판의 색을 작품에 담기 때문이다.

“서울은 사계절이 없어요. 이곳에서는 모심기는 봄, 추수하면 가을, 보리가 올라오면 겨울 등 눈을 뜨면 바로 계절이 다가오지요.”

◇ 아파트 속속 들어서 왠지…

그의 일과는 단순하다. 오전 10시경 일어나 가만히 1∼2시간을 보낸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멍청한’ 시간이다. 이 시간을 보내고 오후가 돼야 미술가의 눈에 사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 겸 점심을 먹고 그림을 그리다 오후 4시30분이면 어김없이 집 밖으로 나간다. 해지는 시골 들판과 저수지에 비친 노을을 보기 위해서다.

박씨는 덕소 일대가 조금씩 변해 가는 것을 느낀다. 논이 밭으로 바뀌고 밭이 다시 아파트 단지로 변신한다. 이런 변화는 농심(農心)에 ‘농사일’ 대신 ‘땅 값’을 심어 주었다. 안타깝지만 누구를 탓하기도 어렵다. 아직 변치 않은 모습에서 유년 시절의 고향을 찾아내 작품 속에 담을 뿐이다.

그는 작품에 대해선 욕심이 많다. 매년 세계적인 미술전시회에 초청받아 참여하지만 세계적 작가의 작품도 그에게 경이롭지 않다. 자신의 작품도 이에 충분히 견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평면과 입체를 동시에 추구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박씨. 그가 정체성을 찾고 세계적인 미술가로 가는 길목이 시골과 고향이다.

<이은우기자>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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