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하인구씨의 3수일기]"원칙없는 출제…운세 측정인가"

  • 입력 2000년 11월 23일 18시 44분


“어이가 없다. 올해 수능시험에서 만점만 20명이 넘는다는데 수능이 무슨 운전면허 시험이란 말인가.”

3수생 하인구씨(20)가 올해 수능을 마치고 자신의 컴퓨터에 기록한 ‘3수 일기’의 첫 대목이다. 하씨는 98년 첫 수능을 친 이후 3년 동안 자신이 생각한 수능의 문제점들을 이렇게 꼬박꼬박 일기로 적어왔다. 하씨의 수능일기는 그동안 수능시험이 응시생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졸속으로 운영돼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하씨는 “‘자기가 공부 못했으니 3수하지’라고 비웃는다면 할말이 없지만 내가 인생을 걸고 준비한 것에 비해 수능은 너무 원칙 없이 출제됐다”며 일기를 공개했다.

98년 고3 시절. 교육부는 9월경 “수학을 비롯해 전 영역을 쉽게 출제하겠다”고 밝혔다. 하씨는 이 발표를 믿고 수학 공부시간을 줄이는 대신 시간을 투자하면 점수가 나오는 수리탐구2 영역에 전념했다.

하지만 막상 수능시험은 쉽지 않았다. 특히 수학은 아주 어렵게 출제됐다. 하씨는 “시험이 끝나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고 일기에 적고 있다. 결과는 354점. 수학을 망친 탓이었다.

99년 하씨는 재수생이 됐다. 연초 교육부는 또다시 “올해 수능도 쉽다”고 발표했다. 9월에 발표된 출제 방향은 ‘언어영역이 조금 어려워져 지난해보다 평균 2, 3점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

“언어가 ‘조금’ 어려워진다니 언어영역에 좀 더 신경을 쓰자. 전체적으로 쉽다니까 너무 어려운 문제는 손을 대지 말자.”

그 해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하씨는 397점을 맞고 전국 50등을 했다. 여유가 생겼고 자신감도 붙었다. 하지만 하씨는 또 낙방했다. 2, 3점 떨어질 정도로 ‘조금’ 어려워진다는 언어가 너무 어려웠던 게 문제였다. 수능에서 375점을 맞은 하씨의 감점 25점 중 15점이 언어에서 비롯됐다. 같은 학원의 한 친구는 다른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았지만 언어에서만 21점을 감점 당하는 웃지 못할 상황을 맞기도 했다.

반면 수학은 거의 ‘산수’ 수준이었다. 모의고사 성적이 20점을 못 넘던 친구가 수학에서 무려 68점을 맞았다. 지난해보다 100점을 더 올렸다는 친구가 주위에서 나오는 등 그야말로 이변이 속출했다.

그리고 올해, 3수생으로 본 수능시험. 하씨는 결국 “이것도 시험인가”로 시작되는 3수 일기를 써야 했다.

“평가가 아니라 ‘누가 누가 실수 안 하나’였다. 쉬운 문제가 어려운 문제보다 배점이 높은 이상한 시험이었다.”

가채점 결과 387점. “인생을 도박장에 내맡긴 심정이다. 나는 올해 합격할지 떨어질지 아직 모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이런 수능은 수긍할 수가 없다. 실력을 측정해야 시험이지, 당일 운세를 측정하는 것을 어떻게 시험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김수경기자>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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