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책]'오노레 도미에' 권력 심장에 겨눈 풍자의 칼날

  • 입력 2000년 11월 17일 18시 32분


오노레 도미에(Honore Daumier ; 1808∼1879)는 ‘풍자만화의 아버지’로 알려져있다. 격변기의 프랑스에서 신문만평이라는 세기적 이미지를 일군 주인공이다. 인상파 회화의 장을 열었던 본인이야 억울하겠지만 이땅에서 알려진 것은 그게 고작이다.

이 책은 도미에를 다룬 첫 저서는 아니다. 새로운 사실이 담긴 것도 아니다. 미술 전문가의 역작도 아니다. 저자는 뜻밖에도 영남대 법학과 교수. 대관절 무슨 매력이 있는 것일까.

첫째, 새로운 시각. 미술가가 아닌 만화가로서 도미에의 인생을 복기했다. 미술사 교과서에서는 다루지 않는 내용이다. 거기다 뜨거웠던 시대의 풍경을 녹여냈다(그래서 부제가 ‘만화의 아버지가 그린 근대의 풍경’이다). 도미에라는 풍자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면 부르지와의 거들먹거림과 노동자계급의 궁핍한 생활이 보인다. 나폴레옹의 쿠테타에서부터 파리코뮨에 이르는 혁명과 반혁명의 매캐한 공기도 맡을 수 있다.

둘째, 한 예술가에 대한 적극적인 재평가. 저자는 도미에를 ‘민주주의의 화가’라고 단언한다. ‘만화가 저항정신에서 나오고 그것은 권력을 향한 비수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당시 도미에의 만화는 권력자에 상처를 가해 그 신뢰도와 권위, 위엄을 실추시킬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출세에 눈 먼 변호사의 캐리커처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이 있다. 풍속사의 대가인 에투아르트 푹스는 이를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풍자화’라고 극찬했다. 또 어용신문을 만들어 나폴레옹을 왕으로 옹립하고자 공작을 벌인 빅토르 위고 같은 지조 없는 지식인에게는 천적과도 같았다.

반면 노동자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고 전한다. 불결한 여자 공중목욕탕을 엿보는 남정네를 그린 풍경화에는 웃음을 머금게하는 페이소스가 있다. 만화를 통해 세상의 소식과 옳고 그름을 알린 필생의 업은 문맹인을 위한 배려로 볼 수 있다. 40여년간 그린 4000여점의 그림은 무지한 그들에겐 ‘가장 뛰어난 시각 뉴스’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잠언은 이 시대 후예들을 향한 꾸짖음처럼 들린다. “만화는 단순히 웃음을 유발하는 장난질이 아니다. 행복을 추구하면서 고뇌에 허덕이는 인간의 압박된 정신에 별안간 나타난 통풍구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만평외에 그가 남긴 유화 작품이 모네 르느와르 세잔 고흐로 대표되는 인상파 미술의 역사를 수 십년 끌어올렸다는 사실도 잊지 않는다. 19세기 근대미술의 전당인 오르세 미술관이 입구의 첫방을 그에게 내줬음은 그런 연유라고 해석한다.

셋째, 미술에 대한 저자의 각별한 애정이다. 방대한 관련 문헌과 원전을 꼼꼼하게 뒤져 시대상과 도미에의 행적을 복원했고, 169개의 도판을 골라 실은 정성이 남다르다. 진보적인 법학도는 미술의 몸과 미술가의 혼을 빌어 자유와 평등 세상에 대한 갈망을 표출하고 싶은 듯하다. 지난해 ‘내 친구 빈센트’를 냈던 그는 올 여름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오노레 도미에' /박홍규 지음/ 256쪽/ 1만2000원/ 소나무▼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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