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 전략에서 세상보기]불황 딛고 선 노점상 '생존의 법칙'

  • 입력 2000년 11월 16일 18시 59분


◇이여자가 사는 법◇

◇압구정동 '토스트 아줌마' 서희원씨◇

1000원 한장에 끝내는 전략을 세워야죠.”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성수대교 인근에 자리잡은 포장마차, 압구정동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호평이 자자한 ‘토스트 전문점’이다. 지난달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기간동안 구청의 단속으로 한동안 나오지 못하자 강남구청 홈페이지에 “아줌마 토스트가 먹고 싶다”는 항의 E메일이 폭주할 만큼.

서희원씨(48)가 하는 이 노점에선 아침점심에는 토스트, 오후 간식시간에는 떡볶이 어묵 붕어빵 등을 파는 간이 퓨전음식을 판다.

“요즘처럼 우유값 400원이 아까울 때면 토스트값으로 지폐두장을 넘기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니 남들이 1500원씩 받더라도 나는 1000원만 받지요. 우유대신 마시라고 새벽부터 나와서 어묵국물 뜨끈하게 끓여놓고요.”

97년까지만 해도 그는 백화점에서 건어물 판매를 했다. 그러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 가 몰아닥치면서 장사하던 백화점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할 수없이 길거리 매장으로 나섰다.

“요즘들어 실직자로 보이는 이들이 가끔씩 찾아와 ‘1000만원도 넘게 번다면서요?’하고 물어요. 말도 안되는데….”

◇체력소비 만만치 않아◇

이렇게 ‘창업 상담’을 하러오는 이들에게는 “헛된 꿈꾸지 말라”고 단단히 말해준다. 단속기간에 걸리거나 상가매장주들이 신고하면 영업 못하는 날도 많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서있어야 하는 등 체력소비도 만만치 않으므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걸 알아야한다는 뜻으로.

서씨의 성공요인은 또 있다. 전통적 메뉴의 진득한 마케팅이다.

압구정동이 마냥 젊음의 거리인 줄 알고 진짜 문어가 들어간 ‘문어빵’, 나무조각손잡이를 갖다붙인 ‘뽑기바’ 등 벤처 성격의 신종희귀 아이템이 몇주전까지 이 근처에서 왔다갔다 했지만 유행이 지나면,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금방 퇴출당하기 일쑤였다. 대신 기존 메뉴와 가격을 시대에 맞게 적절히 구조조정하는게 서씨의 생존 법칙. 샌드위치 값을 1000원으로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딸기잼도 한번 둘러준다. 그것 만으로도 이미지가 ‘불량 식품’에서 ‘집에서 만든 토스트’로 바뀌지 않는가. 그가 토스트에 담는 것은 단순한 딸기잼이 아니라 ‘마음’인 셈이다.

불황임에도 하루 12만∼15만원의 고정매출을 올린다는 서씨는 “노점도 사실은 단골장사, 동네장사”라고 말한다.

손님들의 80%이상이 인근빌딩에서 일하고 있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접’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면서.

◇이 남자가 사는 법◇

◇명동 '수제 털모자 아저씨' 정명훈씨◇

주머니가 추워지면 아무래도 코트 살 돈 아껴 털모자나 목도리 하나 사고 말잖아요.”

서울 중구 명동 중앙통 한가운데에서 손으로 만든 털모자를 파는 정명훈씨(27)의 말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쇠고기 대신 돼지고기 먹고, 코트 대신 모자를 쓰는 법. 이때의 돼지고기나 모자를 경제이론에서는 ‘대체재’라고 하던가.

정씨도 사실 추운 사람이다. 봄에 다니던 이벤트 회사가 문을 닫아 여름내 뭘 할까 궁리해 지난달 노점으로 뛰어들었다. 불경기 속 ‘틈새 시장’을 보고 창업을 한 셈. 그간 야구모자로 불렸던 캡형 모자 유행이 올 겨울부터 털모자로 바뀐 것을 감지, 니트로 짠 털모자전문노점을 열었다.

“노점도 전문화된 아이템이 없으면 길게 보고 장사하기 힘들어요.”

일단 뭐 하나 뜨면 그다음날 똑같은 물품을 파는 노점들이 수십개씩 생기기 마련이라 정씨는 아예 모방이 어려운 수제 털모자로 아이템을 선정했다.

◇하루수입 12만~13만원◇

머플러나 파시미나는 경쟁이 너무 심해 어지간해선 이윤이 남기 어려울 것 같기도 했다. 독창성에 승부를 건 것이다.

같은 제품이라도 동대문에 있으면 싸구려 이미지를 벗기 어렵기 때문에, 강남쪽은 실구매층과 맞지 않는 면이 있어 굳이 명동에 자리를 틀었다. 덕분에 가짜 명품에 싫증난 일본고객들 중 핸드메이드를 높이 인정하는 사람들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진다.

소규모 도매상인들에게 주문을 해 내다 파는데 하루 12만∼13만원정도의 매출을 올린다. 하이틴 잡지에 연예인모델들이 쓰고 나오는 모자 스타일을 잘 봐두었다가 손님이 오면 꼭 한번씩 그 모자를 씌워주고 거울을 보여준다. ‘따라하기 심리’를 자극하는 것만큼 좋은 효과를 내는 것은 없기 때문. 무릇 노점상이란 눈 깜빡이는 순간에 손님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에 심리전에도 능해야 한다.

하지만 명동상가연합회가 노점 때문에 장사가 안된다며 노점의 ‘실체’를 인정해주지 않는게 아무래도 불안하긴 하다. 모든 노점은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만 장사를 하도록 합의가 돼 있어 그 외의 시간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어디, 함께 잘사는 방법은 없는지….

▲ 관련기사

[노점상 백태]노점상도 '떴다방' 있네!

[노점상들 분포]경기 나쁘면 노점상 늘까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