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심포지엄]"통일에 민족 개개인의 다양한 욕구 반영해야"

  • 입력 2000년 11월 13일 18시 47분


통일을 바라보는 21세기 역사학은 ‘모든 통일은 절대선(善)’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민족 개개인의 다양한 욕구를 찾아 대변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양대 임지현 교수는 12일 금강산행 봉래호 선상에서 열린 한신대와 사단법인 통일맞이(늦봄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 주최의 ‘한반도 통일논의의 쟁점과 과제’ 심포지엄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임교수는 이날 발표문 ‘민족의 역사학에서 인간의 역사학으로’에서 1970대에 고 장준하씨가 던졌던 “모든 통일은 좋은가?”라는 질문의 의미를 재검토했다. 장씨는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직후 발표한 글인 ‘민족주의자의 길’에서 “모든 통일은 좋은가? 그렇다”라고 단언했었다. 이에 대해 임교수는 “장준하가 주저없이 ‘그렇다’고 답한 것은, 당시에는 민족통일이란 명분으로 지배이데올로기인 반공주의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모든 통일은 좋다’는 사고 밑에는 통일이 한민족에게 역사적 당위로 주어져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고, 또한 남북의 국가 권력은 각각 이를 이용해 민족통일을 명분으로 민중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80년대 남한의 민중적 민족주의 사학이나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에서조차 여성문제나 천민문제 등 다양한 요구를 민족과 계급이라는 미명하에 소홀히 해 왔다고 지적했다.

임교수는 “통일 열기가 고조될수록 ‘민족의 정체성’을 우선시하는 질서를 구축하려는 유혹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하며, 21세기 한반도 역사학이 진정 해방을 지향한다면 교조적 운동강령에 파묻혀 ‘소시민적’이라고 매도되는 민중의 다양한 욕구에 이제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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