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잠 깨는 고구려 패션…서울대박물관서 이색 패션쇼

  • 입력 2000년 10월 12일 19시 42분


박물관에서 이색 패션쇼가 하나 열린다. 서울대박물관이 13일 오후2시와 6시에 개최하는 ‘역사와 의식, 고구려의 숨결을 찾아서’. 전통 의상과 장신구를 현대적으로 상품화시켜 일반에 선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수장고나 전시장 속의 과거유물을 긴 잠에서 깨워 현대와 미래의 생활에서 살아 숨쉬게 하자는 취지가 담겼다.

일반 출품자는 모두 53명. 김민자, 최현숙, 박명희씨 등 의상작가 33명과 강찬균, 유리지, 서도식씨 등 장신구작가 20명이 그들이다. 이영희(의상)씨와 홍성민, 최우현, 백승철씨(이상 장신구)는 별도로 초대받았다.

출품작 중 8점은 정확한 고증에 무게를 뒀다. 수산리 벽화의 서벽 윗단 행렬도에 묘사된 귀족 남녀와 안악3호분의 병사 복식 등이 그 예이다. 나머지 작품을 고구려 유물들에서 모티브를 따와 이를 새롭게 응용한 것들이다. 작품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전통도 얼마든지 재조명받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종상 박물관장은 이번 패션쇼를 ‘문화혁명’의 하나라고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패션이라고 하면 다분히 서양적인 것이어서 한국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고 봤다. 심지어 한국에는 디자인 개념이 없었다는 극단론까지 나왔다.

이 관장은 이런 시각이 대단히 잘못됐다고 혀를 찬다. 건축과 복식 등 조상들의 생활 곳곳에서 패션의 요소를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문화의가치를 미처 발견치 못하거나 이를 은근히 평가절하하려는 열등의식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점이라고 그는 말한다.

패션쇼 장소가 박물관인 점도 화제가 될만하다. 국내 대부분의 박물관이 무거운 엄숙주의에 빠져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게 현실. 이번 쇼를 놓고도 서울대 안팎에서 비판여론이 적지 않았다. 이 관장은 패션쇼를 위해 별도 무대를 설치하지 않을 방침이라면서 박물관 로비가 훌륭한 쇼의 공간이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서울대박물관은 패션쇼에서 선보인 작품을 중심으로 16일부터 28일까지 특별전을 연다. ‘고증’ ‘형’ ‘색’ ‘아방가르드’ 등 4개 장으로 전시회를 가짐으로써 고구려 의상과 장신구의 조형성을 새로운 문화적 가치로 승화, 발전시켜 보겠다는 의도다. 20일 오후 2시에는 관련강연회도 개최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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