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인터뷰]분당 구미동 빌라촌의 소설가 조정래씨

  • 입력 2000년 10월 8일 18시 52분


소설가 조정래씨
소설가 조정래씨
오전 6시30분. 오늘도 어김없이 탄천을 끼고 골안사 쪽 불곡산에 오른 소설가 조정래씨(58)는 머리가 맑아진다. 스스로를 ‘글 감옥’에 가둔 지 20년째. 아침 산행이 없었다면 ‘아리랑에서 태백산맥을 거쳐 한강에 이르기까지’ 글 감옥에 갇힌 생활을 견디지 못했으리라. 우리 민족사와 소외된 삶의 진실에 천착한 그는 분당의 끄트머리 구미동 빌라촌에 살고 있다.

조씨와 그의 부인이자 ‘사랑굿’의 시인 김초혜씨(58)가 이곳으로 옮겨온 것은 96년 구미동에 빌라촌이 처음 들어섰을 때였다.

“공기와 소음 때문에 서울에선 도저히 글쓰기가 힘들었어요. 서울에서 가까우면서 불곡산 자락에 탄천이 흐르는 분당 구미동 빌라촌이 제겐 적격이었습니다.”

그는 수시로 하늘을 보는 버릇이 있다. 밤에는 버릇이 더욱 심해진다. 별을 보기 위해서다. “이사를 오기 전 서울에서 문득 하늘을 보니 별이 없었습니다. 별을 보지 못하는 곳은 지옥이라는 생각에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구미동으로 오고 나서 글쓰기가 좋아졌음은 물론 부인 김씨의 눈병이 치료되는 덤도 얻었다. 그도 시력이 회복돼 글 쓸 때를 제외하곤 안경을 쓰지 않게 됐다.

그는 서울에서 별을 보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예술과 인간에 대한 탐구를 할 수 있을 까 늘 걱정이다. 유년시절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아리랑’과 ‘태백산맥’은 제가 초등학교 시절 겪고 느낀 자연의 정서를 작가의 눈으로 보충한 것뿐”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집필 중인 ‘한강’이 마무리되는 대로 동화도 쓸 작정이다.

그의 ‘글 감옥’은 아침 6시30분에 시작된다. 일어나면 바로 불곡산 산행. 오전 산행에는 누구와도 동행하지 않는다.

한 시간 산행과 맨손체조를 마치고 9시부터 12시30분까지 글을 쓴다. 점심을 먹고 나면 반드시 한 시간 동안 낮잠을 잔다.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또 글 쓰는 시간.

6시30분 저녁 산보는 아내와 함께 한다. 순수서정 시인과 역사의식으로 뭉쳐진 소설가 부부. 서로 다른 영역에 천착한 두 사람이 ‘인간에 대한 신뢰와 애정은 결국 같다’는 사실을 교감하는 시간이다.

아들 도현(28)은 지난해 결혼해 이곳에서 가까운 수지에서 살고 있다. 최근 얻은 손자와 함께 아들 내외가 찾아오는 것도 큰 기쁨이다.

그의 집은 1층이다. 남들이 기피하는 1층에 입주한 것은 땅이 좋아서다. 베란다에서 뜰로 연결되는 나무 사다리를 놓은 것도 이 때문. 식사 후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잔디밭 풀을 뽑는 것은 그의 버릇이며 기쁨이다. 집앞 잔디밭에서 탄천을 건너 불곡산까지 이곳 생활의 즐거움이 새소리와 함께 가득하다.

그는 현재 쓰고 있는 ‘한강’이 2002년경 완료되면 민족 문제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그의 문학이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환경과 문명이라는 지구 차원의 문제, 세계화란 미명 하에 저질러지고 있는 자본의 획일화, 인간의 근원적 존재의 문제 등 세 가지다. 그가 민족에서 세계로 가는 길목에 그의 집 뜰의 감나무와 불곡산, 탄천이라는 우리 자연이 있다.

<분당〓이은우기자>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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