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 '명품 틈새시장' 인기 "잘 고르면 명품족"

  • 입력 2000년 10월 4일 18시 45분


“프랑스판 ‘보그’지에서 본 프라다 정장 사진을 보여줬더니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만들어 주더라고요. 가격도 진품에 비하면 3분의 1이나 되나?”

명품을 본떠 만들어 파는 ‘명품카피 패션몰’앞에서 신소연씨(25·㈜세정과 미래)를 만났다. 분위기는 명품이면서 가격은 국산브랜드보다 약간 비싼 수준, 그렇다고 ‘짜가’도 아니어서 좋다는 얘기.

“사람 만나는 일이 많은 저에게는 딱 어울리는 매장이에요. 남들은 명품인줄 알거든요.”

‘명품 틈새시장’이 최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거리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대형 멀티숍 20~30% 할인

명품직영점들이 가득한 청담동 명품거리와 2차로를 사이에 두고 맞닿은 이곳에는 여러 브랜드의 해외명품을 한곳에 모아 할인 판매하는 ‘명품 멀티숍’, 명품의상을 그대로 카피한 디자인으로 맞춤정장을 만들어주는 ‘명품카피 패션숍’, 중고명품을 사고 파는 ‘중고 명품숍’ 등 3가지 상점이 몰려 있다. 호화판 청담동 명품거리와 달리 실용주의 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셈.

9월에만 ‘피카소’와 ‘구치토’ 등 주차장까지 갖춘 2, 3층 규모의 대형명품 멀티숍이 문을 열었다. 공교롭게도 한 골목 건너 ‘겐조’와 ‘루이뷔통’직영점이 문을 연 날짜와 비슷해 경쟁상대가 돼버린 형국.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비롯해 질샌더 페라가모 베르사체 구치 베리 등의 의류 구두 액세서리 핸드백 등 잡화까지 망라한다.

신상품이 다수 있는 게 다른 아웃렛매장과 다른 점. 똑같은 상품이 직영점보다 최고 20∼30%까지 싼 이유에 대해 업체 측은 “백화점 수수료, 마케팅비 등에서 마진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외명품사에서 각 직영점에 ‘독점권(Exclusive)’을 준 몇몇 품목을 제외하고는 병행수입이 가능해 모두 틀림없는 진품. 경우에 따라서는 직영점보다 신상품이 먼저 들어올 수도 있다.

명품카피 패션몰도 체인점까지 둔 ‘오델로’를 위시해 ‘내게옴’ ‘디 루이체’ 등 4, 5개 업체가 경합을 벌이고 있다.

2주전 문을 연 ‘모니크앤 마일’의 강선희 실장(27)은 “컨설팅업체나 외국계회사 등 전문직종에서 일하는 고정고객들이 주로 찾는다”고 전했다.

이들은 명품을 자주 접할 기회가 있지만 ‘가격거품에 비해서 품질은 별거 아니다’란 생각을 하는 20, 30대 실속파 직장인이라는 자체분석.

남녀의상 모두 30만∼50만원대로 싼 편은 아니지만 사이즈 자유자재, 디자인은 명품과 동일, 그리고 원단까지 외국 수입원에서 직수입하는 덕분에 ‘상표만 안 붙은 명품’임을 자부한다.

◇중고매장 외국인 자주 찾아

중고 명품숍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하나둘씩 생겨나 지금은 완전한 시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중고품이지만 쓰는 데는 하자가 없는 데다 값도 30∼50% 싸다. 2년 된 ‘브랜드―오프’는 입 소문이 자자해 홍콩 일본 단골들은 우편으로 물품을 사고 팔 정도.

매장을 잘 뒤지면 1930년산 구치 핸드백이나 ‘루이뷔통 100주년 기념 축구공’처럼 한정판매된 기념품 형태의 명품도 구경할 수 있다. ‘소호’ ‘옴부르노’ 등 전문 중고매장과 더불어 명품할인점 형태를 취하는 곳도 많이 있다.

명품멀티숍 ‘구치토’의 한찬수 사장(36)은 “이른바 ‘명품족’과 비슷한 그룹에 속하고 싶어하는 중산층, 외국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10, 20대 학생층의 구미에 딱 맞아떨어지는 곳이 이곳 상권”이라고 설명했다.

명품시장이 활성화돼 있는 일본에서도 이런 틈새시장 스타일의 매장이 백화점에 입점한 명품매장들보다 많은 실정이다.

<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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