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한국의 40대]죽음으로 내몰리는 '일의 노예들'

  • 입력 2000년 10월 4일 18시 36분


4일 오전 7시경 서울 중구 무교동 프라임헬스클럽. 40여명의 남녀가 대형 멀티비전을 통해 뉴스를 보면서 운동에 몰두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30대 직장인이었고 ‘위기의 40대’는 4, 5명.

인천 부평구 일신동의 집을 한시간 전에 나와 직장 부근인 이 곳에서 땀흘리고 있던 김귀식(金貴植·43·패션디자이너)씨.

“지난해말 어릴 적 친구가 사무실에서 일어서다 뇌출혈로 쓰러져 숨졌습니다. 요즘에도 친구나 동료의 죽음으로 문상 가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운동도 하면서 건강을 챙겼으면 살아 있을 텐데….”

A은행 광화문지점 심모과장(40)은 요즘 무심결에 뒷자리를 돌아보곤 한다. 2주 전 출근 직후 화장실에서 뇌출혈로 숨진 김모차장(46)의 자리다. 김차장은 내년 봄 정기승진을 앞두고 지점장이 못되면 퇴직할지도 모른다는 스트레스와 격무에 시달려 왔다.

심과장은 “가족을 위해서라도 건강에 신경써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다. 휴일에도 업무 생각만 하게 된다”고 말했다.

40대는 어느 세대보다 과로와 스트레스가 집중되는 세대다. 또 몸의 기능이 20대의 80%로 떨어지고 혈관벽에 찌꺼기가 쌓이기 시작해 심장병 중풍 등의 위험이 급격히 높아진다. 암 발병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40대 남성 사망률은 세계 1위. 통계청의 인구동태조사 결과 지난해 40∼44세는 1000명에 3.8명, 45∼49세는 5.7명이 숨졌다. 선진국의 2배 이상이다. 사망률 성비(여자 사망자 100명에 대한 남자 사망자 비율)도 40∼44세는 305.4, 45∼49세는 301.8로 일본(190) 미국(180) 영국(150)보다 1.5배 이상 높다.

이화여대의료원 뇌신경과학과 변광호(邊光浩)교수는 “40대는 삶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때”라며 “성인병의 60∼70%는 스트레스와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40대가 되면 여성호르몬이 증가하면서 심성이 감성적으로 변하고 마음의 상처를 잘 받게 된다. 게다가 직장의 중견으로서 쌓은 경륜을 발휘할 때이지만 급격하게 변하는 요즘 세상은 40대의 노하우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소외감으로 이어진다.(마음과 마음 정신과 정혜신원장)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미국의 경우 정부의 적극적인 건강 계도 등에 힘입어 40대 심장병과 암 사망자가 70년대보다 30∼50% 감소했다. 우리나라도 질병 예방활동 등 정부의 노력과 함께 40대 자신이 운동 금연 등을 통해 개인의 ‘건강한 삶’을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고 가톨릭대의대 예방의학과 맹광호교수는 강조한다.

<이성주·이호갑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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