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풀이' 파산신청 봇물…"사회매장" 의도적 신청

  • 입력 2000년 8월 9일 18시 35분


99년 전국 법원에 접수된 파산(破産)신청은 모두 733건. 빚더미에 올라앉은 기업이나 개인이 “법원이 채권자에게 빚잔치를 해 달라”며 낸 신청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최근 서울지법에는 부도난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받을 돈이 있는 채권자가 상대방을 파산시켜 달라고 낸 신청이 속속 접수돼 눈길을 끌고 있다. 유형도 ‘분풀이형’과 ‘임금확보형’ 등 다양하다.

전북에 사는 김모씨(60·여)는 최근 서울에 사는 이모씨(40)를 상대로 이른바 ‘소비자 파산’ 신청을 서울지법에 냈다.

김씨는 98년 아들이 이씨의 차에 치여 숨진 뒤 법원에서 6000여만원의 배상판결을 받았으나 이씨가 “아내 소유의 집 한 채가 있을 뿐 내 재산은 전혀 없다”고 버텨 돈을 받을 길이 막막해졌다.

아들을 숨지게 한 사람이 배상금 지불을 거부하고 나서자 김씨는 “파산자로 낙인찍혀 사회적으로 매장되도록 하겠다”며 이씨에 대해 파산신청을 낸 것.

충청도의 한 대학교에서 청소용역을 해온 Y사 소속 근로자 박모씨 등 190명도 4월 “회사를 파산시켜 달라”며 서울지법에 신청을 냈다.

이들은 소장에서 “회사가 대학에서 용역비를 받고도 급료 3억6000여만원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이를 안 대학측이 용역 계약을 끊어 회사가 부도상태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이면 박씨 등은 빚잔치를 통해 일부 임금을 받은 뒤 모자라는 임금은 ‘임금채권보장법’에 따라 국가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게 된다.

이 법 시행령 4조는 파산선고를 받은 회사의 근로자가 임금을 받지 못한 경우 국가가 체불임금보장기금에서 임금을 지급토록 규정하고 있다.

3일에는 금융피라미드회사인 L사에 수십억원을 투자했다가 사장이 구속된 뒤 돈을 날릴 위기에 처한 투자자 168명이 이 회사에 대해 파산 신청을 냈다. 이들은 “유명 벤처회사에 투자해 높은 이자를 주겠다는 말에 속았다”며 “자본금 10억원이라도 나눠 갖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지법 파산부 관계자는 “파산제도가 국민에게 널리 홍보된 영향”이라며 “분풀이를 위한 소비자 파산 신청의 경우 상대방이 파산선고 후 면책(免責)을 받으면 돈 받을 길이 영영 사라지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신석호기자>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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