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신간]장용민 '운명계산시계' 기발한 상상력 돋보여

  • 입력 2000년 7월 28일 18시 40분


‘1994년 7월12일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 자연사로 알려졌지만 비밀세력에 의한 암살이었다. 1994년 11월29일 서울시 정도(定都) 600년 기념 타임캡슐이 남산골에 묻혔다. 거기에 담긴 것은 생활상 자료가 아니라 비밀세력의 극비문서였다. 1995년 실패한 것으로 발표됐던 무궁화 1호 위성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다….’

장용민(31)의 신작소설 ‘운명계산시계’ 1, 2권(시공사)은 이처럼 황당한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상의 시를 모티프로 평지돌출의 상상력을 과시했던 데뷔작 ‘무한육면각체의 비밀’에 버금갈 만하다. 부제는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통일한국을 배경으로 한민족의 세계 지배 야망을 다룬 만큼 스케일이 장대해졌다.

영화아카데미에서 연출 수업을 받으면서 장씨가 꾸며낸 ‘음모’는 이렇다. ‘신성제국회’란 이상주의 집단이 뇌에서 ‘운명계산시계’란 독성 호르몬을 분비하는 전파무기를 개발한다. 이들은 세계를 지배할 자질을 갖춘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김일성의 유전자를 복제해 8명의 아이를 잉태시킨다. 성인이 된 이들이 자신의 운명을 깨우치며 목숨을 건 테스트 과정을 벌인다. 그러나 마지막에 살아남은 주인공은 권력을 거부하고 야인으로 돌아간다.

이번 작품도 역사적 사실을 기발한 상상력과 정교하게 버무린 스토리가 전작 못지않은 호소력이 있다. 꼼꼼한 취재를 기반으로 한 세부 묘사, 암호를 하나씩 풀어가는 미스터리 형식도 마찬가지.

장씨가 밝힌 작의가 도전적이다. 바로 30여년간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느낀 권력층에 대한 분노다. “권력 엘리트들은 자기 잇속 챙기는 데만 급급하지만 국민을 완전히 속일 정도로 영리하지 못하다. 더 똑똑하면서도 권력에 초연한 엘리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필이면 김일성의 유전자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나라를 엄격하게 장악할 수 있는 카리스마로 치자면 그에 필적할 인물이 없다고 생각했다.”

혹시 통일을 거론하는 남북 화해무드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음모’ 아니냐고 정곡(?)을 찔렀다.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그는 “TV로 보여진 남북 정상의 악수가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만 말했다.

▼'운명계산시계'/ 장용민▼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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