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하는고도 김해]아파트-공장에 파묻힌 가야유산

  • 입력 2000년 7월 17일 18시 39분


가야의 고도, 경남 김해. 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이 묻혔다는 수로왕릉과 그의 부인 허왕후의 묘, 대성동 고분군, 양동 고분군, 회현리 패총 등 가야문화를 보여주는 중요 유적이 있는 곳. 그러나 이들 유적 주변엔 온통 아파트 뿐이다.

▽김해에 가야는 있는가〓김해 도심은 이미 고도로서의 경관이 망가진 상태다. 80년대말부터 부산 창원의 베드타운으로 변하면서 도심 곳곳에 아파트가 세워졌다. 게다가 최근엔 부산 사상공단에 있던 공장이 옮겨오면서 외곽의 야산 자락에 공장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이를 막아낼 제도적 장치가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건무 학예연구실장은 “김해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 도심의 가야 유적 주변만이라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야 고도에 왠 신라 금관?〓국립김해박물관 앞 문화의 거리. 가야시대 뿔잔(각배·角杯) 모양을 되살린 조형물이 김해가 가야의 고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바로 옆 가로등. 그 가로등엔 뜬금없이 신라 금관이 장식돼 있다. 가야 고도에 왠 신라 금관인가.

▽김해의 딜레머〓김해는 같은 고도인 경주 부여와 차이가 있다. 탑 석불과 같이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문화재가 적기 때문이다. 김해지역에도 수많은 고분이 있지만 그것은 지상으로 둥글게 드러난 봉분(封墳)이 아니라 지표면 아래에 묻혀있는 무덤들이다.

즉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쉽게 찾을 수 있는 유물이 적고, 그래서 관심을 유발하기 어렵다는 것이 김해의 딜레머다. 그렇다고 해서 김해가 고도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땅 속엔 여전히 가야문화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성동 고분군에 주목하라〓이같은 딜레머는 역설적으로 김해의 가야 유적 보존에 하나의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대성동 고분군이 그 한 예. 대성동 고분은 금관가야의 실체를 보여주는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된 중요 유적이다. 100여기의 목관묘 토광묘 석실묘 등이 확인됐다. 밀집해있는 고분을 발굴 상태 그대로 노출시켜 보여주면 일대 장관이 될 수 있다.

김해시는 현재 고분군 주변 토지를 매입해 개발을 막고 유리돔으로 고분군을 둘러싸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시 관계자는 “고분을 발굴상태로 보여주면 가야문화에 대한 관심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대성동 고분만이 아니다. 다른 유적 주변의 토지를 서둘러 매입해 더 이상의 훼손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김해〓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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