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폐업 첫날]아슬아슬…조마조마…곳곳서 시비

  • 입력 2000년 6월 20일 19시 00분


의약분업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로 전국 대부분의 병원과 의원이 문을 닫은 첫날인 20일 국공립 의료기관과 보건소는 이곳을 찾은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문을 연 국공립 의료기관의 응급실과 보건소에는 의원과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한 환자들이 몰리는 바람에 환자가 평소보다 30% 가량 늘었고 ‘오늘 진료를 하느냐’는 문의전화도 폭주했다.

이처럼 환자들이 일선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거부당해 국공립 의료기관을 찾는 과정에서 일부 환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바람에 의료사고 시비도 여러 건 일었다.

19일 오후 10시10분경 대구 남구 대명동 영남대의료원 수술실에서 대기 중이던 환자 이모씨(77·경북 영천시 고경면 삼귀리)가 발병 14시간만에 숨졌다.

이씨는 이날 오전 8시경 영천시 영남대부속 영천병원에서 ‘복막염’ 진단을 받았으나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이 병원 의사의 진단에 따라 낮 12시경 대구시립병원인 대구의료원으로 옮겨져 이곳에선 ‘우측 동맥류 파열’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이씨는 “혈관 전문의사가 없어 대구의료원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이날 오후 4시반경 영남대의료원으로 다시 옮겨졌으며 이날 오후 6시40분경 수술실로 옮겨져 수술을 기다리다 과다출혈에 따른 심장마비 증세로 응급처치를 받던 중 숨졌다는 것.

이씨 가족들은 “환자가 영천병원에서 1차 진단을 받은 뒤 종합병원 폐업으로 인한 진료 차질을 피하기 위해 정상진료를 하는 공립의료기관(대구의료원)으로 이송된 뒤 다시 영남대 의료원으로 옮겨지는 등 시간을 허비해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하고 숨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남대의료원측은 “정상적인 진료절차에 따라 수술하려 했으나 환자가 고령인데다 피를 많이 흘려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20일 오전 10시경 서울 중구 을지로6가 국립의료원 응급실에는 10시간 이상 여러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당해 위독한 정모씨(39·무직·서울 성북구 미아동)가 급히 이송돼 왔으나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전날 밤 감기약을 먹은 뒤 지병인 폐부종에 심장부정맥 증세가 재발해 사경을 헤매게 된 정씨는 밤 11시경 동네의 D의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뒤 20일 오전 3시경 다시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D의원을 다시 찾았으나 “위독하니 큰 병원으로 옮기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

정씨의 가족들은 D의원의 추천대로 고려대병원과 강남 성모병원에 연락을 했으나 “의사들이 진료를 할 수 없으니 국립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듣고 수소문 끝에 오전 10시에야 국립의료원에 도착했다고 설명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호흡곤란증세에다 전신이 마비돼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였던 정씨는 응급조치 끝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으나 이날 오후 5시 현재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목숨이 위태로운 상태다.

정씨의 부인 장모씨(40)는 “국립의료원에서는 남편의 병력이나 약물 데이터가 없어 제대로 치료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평소 치료받던 큰 병원들이 치료를 거부해 너무 안타깝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가 하면 중환자실에서 구급차로 옮겨지던 환자가 병원측이 산소호흡기를 부착하지 않는 등 응급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숨졌다며 가족들이 사인규명을 요구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20일 오후 2시경 광주 남구 양림동 광주기독병원 응급실에서 15일 폐렴으로 이 병원에 입원한 양복수씨(69·전남 고흥군 도덕면)가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다 숨졌다.

가족들은 이날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 집으로 옮기기 위해 구급차를 기다리던 중 병원측이 산소호흡기를 부착하지 않고 5분여 동안 방치해 응급실로 옮겼으나 숨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병원 관계자는 “양씨는 병세가 악화돼 집으로 옮기려던 중환자였다”며 “응급조치 미비로 숨졌다는 가족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차지완·대구=정용균·광주=정승호기자>marudu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