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I, II, Ⅲ」

  • 입력 2000년 6월 9일 23시 50분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I, II, Ⅲ」카를 마르크스 지음/백의

펴냄★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 경제학은 이미 죽은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논리가 극성을 부리는 상황, 그리고 정보통신혁명으로 법석대는 현실에서 왜 마르크스인가. 골치 아프게 여전히 마르크스를 읽어서 무슨 ‘영양가’가 있을까. 아마 본서를 대하는 독자라면 이런 의문부터 먼저 들 법하다. 마르크스의 저작 중에서 특히 본서는 헤겔 철학에 나오는 용어가 많이 발견되고 난해함이 극에 달하는 느낌도 받게 된다.

그러나 정보통신혁명의 미래가 어떤 것일가에 관심을 갖는 사회과학도라면 가볍게 무시할 수 없는 생각을 이 책에서 발견할 것이다. 19세기 중엽에 마르크스는 이미(!) 과학과 기술의 발전, 네트워킹에 의해 ‘사회적 개인들’과 ‘지식노동자’가 결정적인 생산성을 발휘하는 사회의 도래를 예견하고 이 생산력의 조건이 자본주의의 원리와 어떻게 갈등하게 되는가를 지적하고 있다.

물론 그가 말하는 네트워트 경제가 오늘날 확산되는 디지털 네트워크 경제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잘 읽어보면 그가 전개하는 논리는 19세기 산업사회보다는 오늘날 정보화사회에 더 들어맞는 것들이 많이 있다. 헤겔이 말했지만 과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르크스는 1848, 49년 유럽 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그해 가을 영국으로 망명한 이후 본격적으로 고전 정치경제학 연구를 시작하였다. ‘정치경제학비판요강’은 그가 1867년에 발간한 ‘자본론’의 제1초고에 해당한다. 이 책은 발표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마르크스가 ‘자기이해’를 위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서가 난해한 주 원인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9년 옛소련에서 최초로 출간된 이래 발표된 맑스의 이론체계, 즉 ‘자본론’의 배후에 있는 탐구 과정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들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새로운 사상과 이론의 탄생이 얼마나 착잡한 이론적 투쟁과 대결 속에서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전범이다.

마르크스가 차분하면서도 치열하게 이론을 연구하기 시작한 1850년대는 1840년대 유럽대륙의 혁명의 파도가 지나가고 그 실패로 인한 실망과 좌절의 분위기가 지배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소련 사회주의의 붕괴 이후 세계자본주의가 발작적으로 성장하는 한편 도처에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커가고 있는 2000년이라는 시점은 묘하게도 당시와 일치하는 느낌이 든다. 부산함이 지나가고 진지하고 치열하게 다시 비판적 사회과학에 정진해 보고자 하는 연구자에게는 본서가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그동안 마르크스 연구의 최대 문제점은 그의 진술을 오류 가능성 있는 하나의 견해로 보지 않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아예 부정하는 양자택일적인 태도였다. 현시점에도 이런 식으로 읽는다면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없다.

우리가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주어진 현실과 그 현실을 일방적으로 변호하는 보수적 이론을 논파할 수 있는 기본적인 관점과 몇 개의 이론적 도구뿐이다. 실제 오늘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관점과 이론 도구는 마르크스처럼 치밀한 태도를 갖고 오늘날의 연구자들이 만들어 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현실비판은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어떤 현실 옹호적인 관점도 거부하는 단호한 작업태도가 아닐까한다. 어떤 이론적 명제를 성급하게 끌어내기 위한 독서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번역도 하나의 작품이다. 생색이 나지 않을 줄을 알면서도 역자가 10년에 걸친 번역작업과 1년에 걸친 교열작업을 거쳐 완성한 이 역서의 높은 완성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김호균 옮김. 384∼480쪽, 1만5000∼2만원.

조원희(국민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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