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달콤한 초콜릿에 유럽역사가 녹아있다

  • 입력 2000년 6월 9일 19시 03분


▼'초콜릿' 소피 D 코, 마이클 D 코 지음/서성철 옮김/지호 펴냄▼

유럽인들이 처음 초콜릿을 접한 것은 16세기초 중앙아메리카에서였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덕분이었다. 카카오 콩을 갈아 만든 초콜릿은 당시 유럽인들에게 혐오의 대상이었다. 시커멓고 괴이하고 사악해 보이기까지 했던 초콜릿 음료.

그러나 그 혐오도 잠깐. 초콜릿은 유럽인의 생활문화, 나아가 유럽의 역사까지 바꾸어 놓았다. 초콜릿이 스페인에 가장 먼저 전해지자 스페인 왕실은 중앙아메리카에 의사를 파견했다. 의사의 보고가 날아들었다. ‘초콜릿은 위를 따뜻하게 하고 숨을 향기롭게 하며 독을 제거하고 장(腸)의 통증 등을 완화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성욕도 자극한다는 점. 이게 바로 초콜릿 인기를 끈 숨은 비결이었다.

부부인류학자가 쓴 이 책은 이같은 초콜릿의 역사를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기원전 1500년경 멕시코 남부에서 탄생한 초콜릿이 어떻게 유럽사의 일부로 자리잡아 갔는지에 저자는 특히 주목한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장식이 유행했던 17세기 바로크시대, 초콜릿은 유럽 최고의 인기 음료로 부상했다. 초콜릿을 담기 위한 전용 주전자가 만들어졌고 다양한 요리법이 등장했다.

이 초콜릿은 그러나 유럽 종교계를 대논쟁으로 몰고 갔다. 문제는 초콜릿을 마시는 것이 단식에 위배되는지의 여부였다.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는 음료인가, 아니면 몸에 영양을 공급해주는 음식인가를 놓고 19세기초까지 200년 넘게 논란을 벌였다. 그 이면엔 또다른 문제가 숨어 있었다. 종교에서의 단식은 음란한 욕망을 없애는 것인데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초콜릿을 마신다는 것은 반종교적이라는 주장 때문이었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엔 초콜릿이 진보 철학자와 보수 철학자들의 편 가르기에 이용되기도 했다. 초콜릿이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당시, 진보적인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초콜릿이 부르조아적인 음식이라고 해서 마시지 않았다. 영국에선 런던거리의 초콜릿 하우스가 보수 정객들의 아지트로 활용됐을 정도였다. 물론 유럽에서의 초콜릿 이야기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유럽에서와 달리 중앙아메리카에선 초콜릿이 인간 피의 상징이었을만큼 신성한 대상이었고 화폐로 쓰일 정도로 귀한 상품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초콜릿을 단순한 음식물로 보는데 그치지 않고 거기 담긴 유럽사의 문화적 맥락을 읽어내는 저자의 안목이 돋보인다.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이자 음식사 음식인류학 연구에 있어서의 역저로 평가된다. 서성철 옮김. 350쪽, 1만4000원.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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