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약품 감시 거의 방치…싸구려원료 마구 수입

  • 입력 2000년 5월 31일 18시 55분


약효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약이 시장에 유통되고 싸구려 원료가 무분별하게 수입되고 있는데도 정부의 관리 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약은 원료 구입 단계에서 제조 과정,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검사가 있어야 하는데도 대부분 형식적인 서류 심사에 그치고 있다.

이 때문에 의약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와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부는 신약에 대해서는 엄격한 임상실험 등을 거쳐 허가를 내주고 있지만 특허가 끝나 누구나 제조할 수 있는 카피(복제)약에 대해서는 대한약전의 기준 및 시험 방법에 따라 서류만 제출하면 대부분 허가를 내주고 있다. 시중에 유통되는 약의 90% 이상은 카피약이다.

약이 시중에 유통되는 단계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2년에 1회씩 제약회사를 방문해 처음 판매 허가를 받을 때 제출한 서류(기준 및 시험검사방법)에 따라 약을 만드는지를 실사한다. 그러나 이 때도 실험실 제조시설 제조과정을 훑어보는 수준이고 실험기록 등 서류가 주를 이룬다.

또 6개 식약청 지방청은 시중에 유통중인 약에 대해 약효 안전성 등을 검사하기 위해 약국에서 약을 무작위로 수거해 검사하는 사후 품질관리(QC)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인력 부족으로 1년에 3000품목만 검사가 가능해 3년 만에야 실제 유통중인 1만여 품목에 대한 검사가 가능하다. 문제는 유효기간이 3∼6개월밖에 안되는 약도 있어 약효가 이미 떨어진 약을 소비자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조공정과정관리(KGMP) 이외에 약의 원료에 대한 검사나 규제 조항도 없다. 식약청 서울지방청의 경우 지난해 원료를 수거해 검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외국 선진국에선 원료에 대한 검사는 물론 제조 과정에서 원료나 공정이 바뀌면 즉각 시험을 해 판매 여부를 다시 결정한다.

정부가 지난해 5월 임산부 빈혈치료제 페리친제제 68품목에 대해 품질이 불량하다며 품목허가 취소 및 제조업무 정지 명령을 내렸을 때 원료검사장비도 없고 요원이 실제로 조사하지 않았는데도 장부상으로는 시험을 한 것으로 돼 있었다.

제약회사와 식약청 관계자의 유착 관계도 드러나 지난해 초에는 식약청 고위 관계자가 뇌물을 받다 국무총리실 암행감찰반에 적발되기도 했다.

식약청 관계자는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9만3000명이 일하고 있지만 우리는 770명밖에 안된다”며 “엄격한 심사 등 좋은 제도를 실시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식약청은 내년부터 보다 철저한 의약품 관리를 위해 원료등록제(DMF)를 새로 도입하고 이제까지는 권고 사항이었던 원료 등 제조과정을 균일하게 만드는 공정관리(BGMP)를 의무화할 계획이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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