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현대전자 IMF로 입사취소자 31명에 1900만원씩 지급"

  • 입력 2000년 5월 1일 19시 40분


합격통지서를 받은 뒤 회사 사정으로 입사가 취소된 경우 첫 출근 예정일부터 최종 채용결정 취소일까지는 정식 직원으로 보고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일정 기간 기다려 보다가 상황이 호전되지 않으면 입사를 포기하겠다’는 동의서를 작성한 채용 내정자들에게 내려진 것으로 근로자의 권리를 폭넓게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고법 민사15부(재판장 김동건·金東建부장판사)는 1일 97년말 현대전자에 입사하기로 내정됐다가 외환 위기로 99년6월 입사가 최종 취소된 신동훈씨 등 7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회사측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1심 판결을 뒤엎고 “현대전자는 신씨 등 31명에게 1인당 1900여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써줬지만 채용 결정이 최종 취소될 때까지의 재산상 권리를 보장했다는 점에서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부는 신씨 등의 첫 출근 예정일부터 최종 취소일까지 14개월간 종업원 지위를 인정했으며 월급여액인 160만원을 지급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입사를 포기하는 대신 위로금 200만원을 받고 법률적 권리를 포기한 강모씨 등 42명의 소송은 기각했다.

재판부는 또 “채용 취소 자체는 요건을 갖춘 정당한 해고였다”면서 채용 취소 이후의 종업원 지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31명도 법률적 권리를 포기하는 합의서를 작성했으나 △위로금 받기를 거부했고 △1년 이상 채용이 지연되면 생계에 타격이 있고 △근로자가 사전에 임금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근로기준법 정신에 따라 급여가 지급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현대전자는 채용 통보는 입사를 앞둔 준비 행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최종 합격 통보자는 근로계약의 승낙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씨 등은 97년 11월 현대그룹 공채에서 면접 및 신체검사 등을 거쳐 현대전자에 최종 합격했으나 지난해 6월 결국 취업하지 못하자 합격 통지일 이후 급여 등을 달라며 소송을 냈으나 지난해 1심에서는 각하됐다.

97년말 이후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상당수의 기업들이 채용 결정 후 실제 발령을 미룬 뒤 채용을 취소한 사례가 있어 비슷한 소송이 잇따라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현대전자에 합격한 뒤 위로금 200만원 수령을 거절하고 합의서 작성도 거부한 김모씨 등 32명이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

김씨 등도 지난해 1심에서 종업원 지위를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1인당 275만원씩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에 앞서 지난해 서울지법 남부지원은 동양시멘트에 합격한 뒤 채용이 취소된 김모씨 등 3명이 동양시멘트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채용이 확정된 사람에게는 노동자 지위를 인정해 재고용 때까지 월급과 상여금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었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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