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인류의 해저 대모험'/해저 향한 인간 도전史

  • 입력 2000년 4월 21일 20시 09분


▼'인류의 해저 대모험' 클로드 리포 지음/수수꽃다리 펴냄▼

태고적부터 ‘생명의 자궁’인 바다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바다는 쉽게 자기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았다. 지난 수 천년간 인간은 끊임없이 도전했고, 대부분 좌절했다. 그 도도한 해저탐험사가 한 권의 책으로 총정리됐다. 특히 본격적인 해양 전문서가 전무하다시피한 가운데 출간된 것이어서 의미가 깊다.

이 책의 주제는 ‘인간은 어떻게 더 깊은 바다속을 정복하게 됐는가’로 요약할 수 있다. 방대한 사료, 풍부한 시각자료, 흥미진진한 설명이 독자를 ‘지적 심연’에 빠뜨린다. 프랑스 해군장교 출신으로 해저탐사를 지휘했다는 저자 약력이 책의 무게감을 더한다.

내용적으로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우선 아리스토텔레스시대부터 18세기까지 바다속을 엿보기 위한 갖가지 시도들을 발굴했다(1∼4장). 이어 19세기부터 1940년대까지 잠수복과 잠수정의 발달사를 경유해(5∼7장), 심해 탐험의 현대적 성과를 정리했다(9,10장). 끝으로 2차대전 당시 수중특공대의 활약상과 군용잠수함의 발달사를 덧붙혔다(8,11장).

그중에서도 알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부분이다. 저자는 인류의 본격적인 해양탐험 시기를 19세기초로 본다. 호흡관이 달린 근대식 구리헬멧 잠수복과 압축공기를 이용한 자가호흡 기구가 발명된 시기다. 당시에는 물속에서 급히 부상할 때 생기는 소위 ‘잠수병’이 생기는 이유를 몰라 수심 20m까지 밖에 들어가지 못했다. 20세기 들어서는 일단 잠수병의 공포를 벗어났지만 이번엔 고압으로 압축된 질소와 산소 혼합가스가 유발하는 뇌기능 저하 증세(일명 ‘심해취기’)로 인해 수심 40∼50m에서 발목이 잡히고 만다.

또 19세기말에는 나폴레옹 시대부터 머릿속에서만 그려오던 잠수정 개발도 본격화됐다. 초창기 잠수정은 대부분 평형을 유지하지 못해 곧장 바다 밑바닥에 쳐박히곤 했다. 무려 2천여회의 잠수실험을 거친 뒤야에 1888년 물속에서 균형을 잡고 움직이는 최초의 잠수함 ‘짐노트’가 개발된다. 저자는 또 바다속에 대한 급격한 관심은 침몰한 화물선의 보물 인양작업을 주요한 동기로 꼽는다.

1940년대에는 스쿠버의 전설로 꼽히는 프랑스의 쿠스토가 등장하면서 해저탐사의 새 장이 열린다. 그와 팀원이 호흡관에 의존하지 않는 ‘밧줄 없는 잠수혁명’을 이루는 이야기는 꽤나 드라마틱하다. 이들은 1943년 수심 50m의 철옹성을 돌파했고 수심 70m, 90m의 벽마저 넘고으면서 잠수사에 신기원을 마련한다.

해저탐험의 현대적 성과를 집대성한 9, 10장은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9장 ‘해저 과학자들’에서는 인간이 심해의 처녀지에 발을 들여놓은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인간은 1930년 줄에 매달린 잠수기로 수심 1000m의 바다에 진입했고 30년뒤에는 수심 1만m까지도 내려갔다. 또한 심해탐사선을 통해서 해양 과학자들이 바닷속 땅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것이나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심해 오아시스’를 발견한 대목도 흥미진진하다.

2차대전이후 80년대 중반까지 심면을 향한 호기심을 집대성한 10장 ‘현대의 잠수, 새로운 과학분야’는 전문적인 내용이란 ‘흠’에도 불구하고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심해에서 압축산소 독성, 뇌기능 저하, 질소 마취 같은 일촉즉발의 위험에도 아랑곳 않는 개척자들의 사투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수 많은 사람과 동물의 희생에도 인간이 바다로부터 얻어낸 잠수한계란 고작 수심 500m에 불과하다. 우주여행보다 물속을 50m 더 들어가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560쪽,1만5000원.

▼해저모험 약사▼

BC325 알렉산더 대왕, 나무통으로 잠수기구 사용

AD1331 물안경 출현(페르시아)

1531 밑 뚤린 나무통으로 만든 잠수종(鐘) 개발(영국)

1624 노를 젓는 잠수함 원형 실험 성공(네덜란드)

1772 구리헬멧에 관이 연결된 잠수복 출현(프랑스)

1800 스크루 방향키 갖춘 첫 잠수정 ‘노틸러스’ 등장(프랑스)

1829 압축공기 이용한 근대식 잠수복 첫선(영국)

1872 첫 해양과학 탐사선 챌린저호 출항(영국)

1888 최초의 잠수함 ‘짐노트’ 개발(프랑스)

1889 감압표 작성으로 잠수병 예방 계기 마련(영국)

1927 압축공기에 질소 대신 헬륨 사용(미국)

1943 현대적인 스쿠버 장비 개발(프랑스)

1948 구형잠수기로 수심 1360m까지 하강(영국)

1953 심해관측선 ‘바티스카프’호 수심 4000m 심해 첫발(프랑스)

1960 ‘트리에스테호’ 수심 1만916m 도달(프랑스·이탈리아)

1963 수심 300m 잠수에 성공(스위스)

1977 수심 500m 잠수에 성공(프랑스)

<윤정훈기자> 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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