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날]'편견의 바다'건너 우리의 이웃으로

  • 입력 2000년 4월 19일 19시 20분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우리들로부터 격리됐던 장애인들이 하나둘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고 있다.

인천시 서구 가좌동 풍림아파트 103동 1206호. 우리 이웃의 32평짜리 이 평범한 아파트에 20년 이상 ‘편견의 바다’ 저편에서 살아야 했던 장애인 5명이 최근 둥지를 틀었다. 이른바 그룹홈 생활이다.

그룹홈이란 재활원 등 시설에 수용됐던 장애인 4, 5명이 지역사회 내의 일반주택에서 생활하면서 재활교육사의 최소한의 도움을 받으며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재활 프로그램.

▼지능지수 70이하도▼

지능지수 70 이하의 1급 정신지체장애인인 박홍식(38) 이창희(36) 이봉철(31) 전조필(26) 오희락씨(36)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태어난 지 얼마 안돼서부터 인천시에서 배로 15분 떨어진 옹진군 북도면 장봉도의 장봉혜림재활원에서 다른 100여명의 장애인과 함께 집단 격리생활을 해 왔다.

이들은 수용생활 때는 직원들이 다 해주던 일들, 예컨대 밥 짓고 장 보고 빨래하는 일 등을 스스로 해내야 하지만 마냥 즐겁기만 하다.

아직 한달도 안돼 혼자서는 집을 찾을 엄두를 못 내고 버스와 지하철 타는 일도 낯설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산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다.

이창희씨와 오희락씨는 벌써 이미용기구 제조업체에 취업해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생활을 시작했다.

재활원에서는 남에게 음식을 권하는 법이 없던 이봉철씨는 과일과 찻잔을 나르며 “어서 드시라”고 손님접대하는 솜씨가 제법이다.

같은 동 1층에는 장봉혜림원에서 첫 그룹홈 생활을 시작한 선배 5명이 있다. 95년부터 그룹홈 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모두 직장생활을 해 한달에 40여만원의 돈을 벌면서 결혼 등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워나가고 있다.

▼여자친구와 데이트▼

직장동료와 어울리고 여자친구와 데이트도 할 정도로 대인관계가 자연스러워졌고 어휘력도 풍부해졌다. 특히 1주일에 사나흘 정도는 재활교육사 없이 자신들끼리 생활해나가는 데 아무런 문제를 못 느낄 정도가 됐다.

장봉혜림원의 이런 실험은 현재 여섯 가구 25명으로 늘어났고 정부도 97년부터 그룹홈 사업에 대해 연간 2200여만원씩 지원에 나서 올해는 21가구로 국고지원을 확대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장애인 주택임차비용으로 두 가구에 각각 8000여만원을 지원하기도 했다.

혜림원 임성만원장(42)은 “현재 그룹홈 형태의 장애인 공동생활 가정은 전국에 190여 곳가량이지만 시설에 격리수용됐던 정신지체장애인들의 사회복귀 형태는 10여곳 가량”이라며 “혜림원까지 포함해 장애인의 격리수용시설 자체를 줄여가는 것이 그들의 사회복귀를 앞당기는 지름길”이라고 단언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장애인을 격리수용하는 조치가 장애인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일련의 판결을 바탕으로 수용시설을 최소화하고 이들을 지역사회로 복귀시키는 작업이 일반화됐다.

▼원하는 서비스 선택▼

특히 정부지원금이 시설이 아니라 해당 장애인들에게 상품권(바우처)형태로 지급돼 이들 스스로 원하는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연세대 최재성(崔在成·사회복지학과)교수는 “그룹홈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는 주택문제 해결이 필수”라며 “특별주택융자제를 도입하거나 임대주택 건립시 전체 가구수의 1% 가량을 장애인을 위한 영구임대가구로 의무분양하는 법안 도입을 검토할 때”라고 제언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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