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 '수런거리는 뒤란'/황톳빛 풍경화속에 삶의향기 가득

  • 입력 2000년 4월 7일 20시 03분


문태준(30)시인의 첫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창작과비평사)은 추풍령 근처 황학산 자락, 40여채의 시골집이 옹송그리는 늙어버린 촌 풍경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작가의 고향인 그곳은 ‘한때 굴러다니던 저 자전거, 흙 덮어쓴 농구 곁에 멈춰’(내 마음이 흉가에) 있는 한적한 마을. 독자는 늙은 구렁이며 오리, 색 바랜 기억들이 오글거리는 작가의 뒤란을 엿보게 된다. ‘고양이 오줌을 받아 귓구멍에 부으면 귀머거리의 귀가 뚫린다’는 식의, 주술과 동네신과 금기들도 독자의 시선을 부적처럼 따라다닌다.

이른바 70년대산 시인의 시집에서 이런 토담빛의 세계를 만나다니! 라며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만은 않을 일이다.

‘저 햇살, 천막을 펼쳐 멸치들을 후리고 있다/바람의 공회당, 그 후락(朽落)한 폐옥을 낮달이 걸어들어가고 있다’(유랑극단) 라는 풍요한 시각적 이미지나, ‘장판 걷혀진 구들장으로 불기둥이/훅 지나간다 흔적은 얼마나 관능적인가’(빈집3)이라는 내면의 단단한 옹이를 놓쳐버릴 수 있다.

시인 장석남은 ‘마치 뜨거운 뼛속에서 구워낸 시들만 같다. 읽고 나니 내 마음의 뼈들도 뜨끈하다’고 문태준의 시를 평한다. 시인 김명인은 ‘무명(無明)을 살수록 더욱 생생해지는 삶 자체의 향기를 그의 시가 들려준다’고 말한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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