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화가의 '우리도자기' 사랑…고려청자등 되찾기 20여년

  • 입력 2000년 2월 22일 19시 03분


일본으로 유출됐던 우리 도자기 58점이 한 서양화가의 20여년 노력 끝에 이 땅에 되돌아왔다. 고려청자 조선백자 조선분청사기 등 58점.

서양화가 강모씨(68·경기 고양시 거주)는 1970년경부터 20여년 동안 한 점 두 점 수집한 도자기 전부를 자신이 자문위원으로 있는 문화단체인 한걸음광장에 최근 기증하기로 했다.

그동안 도자기를 보관해 오면서 주변의 유혹도 있었고 갈등도 있었지만 ‘문화재는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내가 죽고 나면 기증 사실이 저절로 다 알려질 테니 절대 이름과 사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도자기를 기증받게 된 한걸음광장의 박동(朴東·40) 사무총장은 “조만간 도자기들을 공개하고 기증자의 뜻을 살려 모두 국립박물관과 대학박물관 등에 다시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도자기 소장품이 취약한 대학박물관에 주로 기증할 계획이다. 한걸음광장은 전통문화재 보호 및 해외 약탈 문화재 반환운동을 벌이고 있는 단체.

기증자 강씨는 젊은 시절부터 우리 도자기에 관심이 많았다. 1970년경부터 일본에서 주로 미술 활동을 시작해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에선 적잖은 인기를 끌었다. 당시 그는 일본인들에게 불화(佛畵)와 서양화를 그려 주었다. 그는 그 대가로 돈이 아니라 오로지 한국 도자기만을 요구했다. 우리 도자기를 되찾아야 한다는 일념에서였다. 매년 두세 점씩, 그렇게 20년동안 모은 것이 58점. 그 중 10여점은 지금은 도산한 기업인 아오야마(靑山)그룹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기증품은 모두 고려와 조선을 대표하는 도자기들이다. 고려청자 음각 연화무늬 주전자, 고려백자 철화 당초무늬 항아리, 고려 회청자 철화당초무늬 주전자, 조선 백자 매화무늬 주전자, 조선분청 상감 연화당초무늬 매병 등.

강씨는 1990년대 중반, 국내에 자리 잡으면서 도자기 찾는 일을 중단했다. 몇차례 초대전도 가졌고 지금은 그림 그리기에 전념하고 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느냐는 기자의 거듭된 요청에 그는 “늘 야인(野人)처럼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만 말했다.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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