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민경현 첫 창작집 '청동거울을…' 펴내

  • 입력 1999년 10월 29일 20시 54분


절에 화려한 단청을 입히는 화승(畵僧), 전생의 업보에 겹겹으로 얽힌 무녀(巫女)…. 작가 민경현(33)이 다루는 소재들은 대개의 동년배 작가들과 사뭇 다르다.

그가 등단 2년3개월만에 첫 창작집 ‘청동거울을 보여주마’ (창작과비평사)를 내놓았다. 그의 작품이 눈길을 끄는 것은 독특한 소재뿐만은 아니다. 단청을 입히듯 꼼꼼하고 섬세한 그의 문장도 남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기둥이 무거울세라 공포(控包)마다 흐르는 구름무늬를 태우니, 중방구름이 산을 띠처럼 감아돌듯, 지붕은 구름 위에 두둥실 떠 있는 셈이다…. 그 밑으로는 벌건 나무 속살을 살그머니 가리는 희고도 반짝이는 영락주의(瑛珞柱衣)를 드리우면, 핏빛으로 땅에서 불뚝 솟은 기둥이 수월관음의 통통한 속살처럼 부끄러운 맛도 지니게 되는 것이다.” (꽃으로 짓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97년 1월 돌연 직장에 사표를 냈다. 마음껏 책을 읽고 싶어서였다.

책을 싸들고 절을 찾아든 그는 적막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에 매료됐다. 특히 오백년을 간다는 단청의 화려하면서도 유장한 아름다움에 매혹돼 금어(金魚·화승)들을 따라다니며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잊어버리고 있던 정신적 원형질이 여전히 우리의 의식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느꼈어요. 그 속에서 제 문학의 단서를 찾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표제작 ‘청동거울을…’은 명두(明斗·무속에 쓰는 청동거울)무당의 딸 세화를 사랑했던 주인공이 오구굿(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는 굿)에 초대돼 세화의 넋을 만난다는 이야기. 토속신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토대로 아메리카 인디언의 무속의식도 다루며 거대한 샤머니즘의 세계를 탐색한다.

작가에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당대성’(當代性)의 결여를 지적하는 지인들의 말이 때로 가슴을 따끔하게 한다.

“당대의 중요한 현실을 형상화하는 것도 값진 작업이죠. 그러나 ‘오래된 청동거울’을 들여다 보며 우리가 잊고 있는 근본정신을 환기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소설의 소재는 계속 확장해 나갈 생각입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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