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잊혀진 '초원의 제국' 흥망 읽기

  • 입력 1999년 10월 29일 18시 41분


▼'유목민이 본 세계사' 스기야마 마사아키 지음/이진복 옮김/학민사▼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르네 그루세 지음/김호동 유원수 정재훈 옮김/사계절 지음▼

홀연히 나타나 고대 서아시아의 제국을 무너뜨린 뒤 갑자기 북방으로 돌아간 스키타이(기원전 6∼3세기), 게르만족을 밀어내면서 로마제국을 혼란에 빠뜨렸던 훈족(4세기), 멀리 북방 바이칼호 근처에서 일어나 한세기도 지나기 전에 베이징과 바그다드 키예프를 함락시켜 대제국을 이뤘던 몽골(13∼14세기)….

말을 타고 대평원을 가로지르며 한 시대를 호령했던 중앙아시아의 유목 기마민족들. 그러나 16,17세기 몽골을 끝으로 서구의 무력 앞에 굴복하면서 역사의 기억 뒤편으로 밀려났던 비운의 민족들. 최근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 3년전 창립된 중앙아시아학회가 활발히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고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부터 몽골 현지에서 유적을 발굴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관련 서적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실정. 이런 상황에서 최근 잇따라 나온 두 권의 역사서가 눈길을 끈다. 프랑스 학자가 쓴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와 일본 학자가 쓴 ‘유목민이 본 세계사’. 번역서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이 분야의 명저로 꼽히는 책들이다.

우선 두 권의 책은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동안의 동아시아 역사 연구는 중국 중심이었다. 서구에서도 유목민의 역사를 애써 외면해왔다. 유목민의 역사는 그렇게 세계사의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또한 유럽이나 중국은 유목민족을 말을 타고 약탈을 일삼는 야만 종족 정도로 이해해왔다. 승자 중심의 역사서술 때문이다. 두 책은 이러한 왜곡과 편견을 뛰어넘어 유목민역사를‘있는 그대로’기술하고 있다.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는 중앙아시아 지역 수많은 유목민족의 흥망성쇠를 알기 쉽게 서술하고 있다. 특히 유목민족이 고대에서 중세까지 중국이나 유럽과 대등한 관계였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그들이 어떻게 순식간에 주변을 정복하고 또 쇠퇴해갔는지를 추적했다.

‘유목민이 본 세계사’는 좀더 도전적이다. 유목민의 대외관계에 초점을 맞춰 그 특성을 살펴보고 있다. 중국의 한나라가 흉노족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주장도 거침없이 펼쳐 놓는다. 이 책은 너무 급진적이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유목민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교정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준다.

이 책들은 중앙아시아 유목민 역사의 복권을 위한 하나의 출발이다. 아울러 우리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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