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스토리작가' 목소리 커진다…實名 당당히 내걸어

  • 입력 1999년 8월 15일 18시 44분


80년대 중반 이현세의 장편극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위력은 대단했다.전국의 골목골목마다 3만여곳의 대본소가 들어서는 만화 붐이 일어났고 이현세는 유명인이 됐다. 그러나 이 만화의 스토리작가가 김민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외에도 걸작으로 꼽히는 한국만화에는 대부분 무명의 스토리 작가가 있었다. 김세영(오!한강), 김민기(공포의 외인구단,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노진수(아스팔트의 사나이), 야설록(아마겟돈, 남벌), 박하(비트), 장대일(허슬러)….

신세대 작가들의 대거 등장으로 이른바 ‘제2의 붐’을 맞고 있는 만화 산업. 그동안 만화가의 ‘고용인’수준에 머물렀던 스토리작가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실명(實名)의 스토리작가와 함께 시나리오와 그림, 마케팅을 철저히 분업해 공동창작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

‘아일랜드’‘좀비헌터’의 양경일은 그 대표적인 예. ‘좀비헌터’는 일본인 스토리작가와 함께 작업을 하고 있고, 11월부터 한일 양국의 만화잡지에 동시에 연재하게될 ‘더 풀즈’는 윤인완 김지룡 김민관씨 등 스토리작가 3명이 팀을 이뤄 공동창작을 하고 있다. 또한 최근 무협만화 ‘용비불패’(류기운 글, 문정후 그림)와 요리만화 ‘짜장면’(박하 글, 허영만 그림), 학원물 ‘짱’(김태관 글, 임재원 그림)등도 실명 스토리작가의 탄탄한 기획이 돋보이는 작품.

야설록의 ‘야컴’이나 ‘서울 창작’처럼 이제 스토리작가들은 집단으로 모여 회사를 차리기도 하고, 만화학원엔 스토리작가반도 별도로 생겨났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만화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70%를 하청제작하고 있으면서도 해외에 수출할 변변한 작품하나 제작하지 못하는 것은 스토리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스토리작가의 저작권에 대해 법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유지호는 “이름도밝혀주지 않는 작품을 위해 누가 신경써서 대작을 만들겠는가. 그저 ‘돈되는 아이템만 좇는’신변잡기 수준의 스토리만 양산되는 것도 그 이유”라고 설명.

만화평론가 박인하는 “분업화 시대에서 만화가는 이제 그림만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영화감독처럼 전체 제작 과정을 컨트롤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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