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툴루즈 로트레크의 「세탁부」

  • 입력 1999년 6월 11일 19시 31분


창문 밖, 햇살은 투명하다. 햇살은 창의 틈새를 날렵하게 비집고 그녀를 방문한다. 빛은 화면 가득한 그녀의 흰옷에 닿아 폭발하자 표백된다. 빛은 치마 쪽으로 미끄러진다. 여자는 옷을 세탁하다 문득, 침입한 빛에 이끌려 시선을 외부로 향한다. 화가는 세부를 생략한 채 바로 그 순간, 그녀를 클로즈업한다. 툴루즈 로트레크의 ‘세탁부’.

화가는 그녀가 갖는 호기심의 강도를, 눈을 가리며 흔들리는 머리카락으로 대신한다. 머리카락은 은폐와 노출을 동시에 내포한다. 바로 호기심이다.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코와 입술에서 그녀의 성격이 간파될 듯하다. 로트레크는 인물의 순간을 이처럼 날렵하게 포착했다. 그러나 왠지 그녀의 호기심은 깊은 우수를 담고 있다. 그녀의 아픈 기억을 꼽추화가였던 로트레크가 알고 있었던 까닭일까. 모델은 카르망 고댕. 로자 라 루즈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불렀던 여자. 노래를 통해 자신을 자학했던, 병약한 노동계급 출신의, 그러나 조용했던 여자. 불구인 자신과 같은 약점을 그녀에게서 발견한 걸까. 그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내면을 간파하는데 탁월했다. 그것도 참 아름답게.

니체라면이아름다움이“진실로 결핍에서, 궁핍에서,우울에서,고통에서 유래되었단 말인가”(‘비극의 탄생’)하고 물어볼 것만 같다.-끝-

조용훈(청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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