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사진으로 본 「복제의 明暗」

  • 입력 1999년 3월 15일 19시 20분


유전공학의 발달로 생명복제가 가능해진 시대. 과학이 아닌 예술의 시각에서 바라본 복제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설치작가 양만기의 ‘복제정원’(8일∼23일·일민미술관)과 사진작가 고명근의 ‘복제와 복고’(2월26일∼3월 17일· 학고재, 아트스페이스서울)가 예술에서 바라본 복제를 담아냈다.

두 작가는 공통되게 ‘시간’을 살핀다. 복제란 이미 존재했던 사물이나 현상을 다시 생산한다는 의미. 따라서 먼저 존재했던 것들의 ‘과거’는 지금 다시 만들어지는 것들의 ‘현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연관을 맺는다. 또 복제된 것들의 운명을 가늠함으로써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두 작가는 복제를 바라 보며 문명의 시대적 의미를 고찰했다.

일민미술관 2층 전시실 한 가운데 나무로 만든 집 한 채가 있다. 집 담벽에는 원시인과 갓난아기, 사람들이 살아가는 여러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인류의 역사란 바로 사람들의 집짓기와 마찬가지로 보고 이를 집과 담의 그림으로 집약해 냈다. 갓난아기는 원시부터 현재까지 인류의 역사를 이어온 생명의 연속성, 즉 생명복제를 상징한다.

집 속에는 디즈니 만화영화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상영된다. 요술램프는 무엇이든 갖거나 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상징. 인류는 세월 속에서 욕망의 집을 짓고 그 집에 ‘다양한 색칠’을 해오고 있다.

작가는 집 주변에 정원을 배치하고 그 안에 포근함 그리움 치열함 애잔함을 표현하는 갖가지 사진과 설치 작품들을 배치해 놨다.

양만기는 ‘삶의 복제’를 펼쳐 보인 것이다. 삶이란 욕망과 애닯음과 그리움과 힘겨움과 포근함이 뒤섞인 실체다.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96년 대한민국 미술대상 수상자인 그는 “사람들은 조상의 삶을 복제하고 새로운 자신의 삶을 섞죠. 그 복제와 혼합 속에 또 다른 삶의 새로움이 생겨납니다”고 말했다.

고명근은 다르다. 인간이 아닌 궁궐을 내세웠다.경복궁 등 옛 궁궐의 사진을 주로 찍어온 그 답다.이번 전시회에서 그는 웅장한 궁궐 사진들을 여러 장 이어놓은 작품들을 주로 선보였다. 낡고 사라져가는 궁궐들이 애잔한 느낌을 준다.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과거에 웅장했던 것이 스러져갈 때 느껴지는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애잔함을 보여준다”며 ‘낙조의 미학’이라고 평했다.

여러 장이 이어지는 사진은 ‘대량생산 기술’로도 해석된다. 대량생산이 정점에 오른 현대 문명도 언젠가는 궁궐들처럼 역사 속에서 사위어 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양만기전 02―721―7772, 고명근전 02―720―1524.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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