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욕심 앞선 초등학교 ‘조기-늑장 입학’

  • 입력 1999년 1월 4일 19시 10분


주부 김은순씨(32·서울 마포구 아현동)는 1일 새해 첫날부터 남편 이수근씨(34)와 한바탕 격론을 벌였다. 3월이면 만 5세가 되는 외아들 경민이의 초등학교 입학시기 때문이었다.

“47세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아 세상을 놀라게 한 줄리안 슈빙거 등 미국의 노벨상수상자 가운데 80% 이상이 20대에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한글도 잘 읽고 암기력이 뛰어난 아들의 잠재력을 길러주기 위해 조기취학시켜야 한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

“15세 어린 나이에 대학을 들어간 ‘비상한 아이’도 수업을 따라 가지 못해 몇 년 전 자살했어요.”

지적능력을 살려주는 것도 좋지만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이 이씨의 반론.

입학일은 두 달이나 남았지만 김씨 부부처럼 적지 않은 부모들이 벌써부터 조기입학과 입학유예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조기입학이 처음 허용된 96년 서울지역 만 5세 조기취학 아동은 2천65명. 97년엔 조기입학의 부작용을 우려해 1천9백22명으로 한풀 꺾였다가 98년에는 3천4백66명으로 크게 늘었다. 96년 허용범위가 3, 4월생으로 한정됐다가 98년부터 만 5세 아동 전체로 확대된데다 IMF 한파의 영향으로 돈이 많이 드는 유치원 대신 학교를 선택했기 때문.

반면 ‘발육이 부진하다’는 사유서까지 제출하면서 멀쩡한 자녀의 입학을 늦추는 부모도 많다. 96년 2천7백58명이었던 ‘늑장입학’ 아동이 97년 4천1백78명으로 크게 늘었으며 98년에는 4천7백42명으로 증가.

유아교육전문가들은 자녀의 신체 정서 발달은 도외시 한 채 부모의 욕심 때문에 취학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고 조언한다.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이기숙교수는 “조기취학 아동의 경우 글이나 셈 등 지적 능력에서는 따라 갈 지 모르나 인성 신체 정서적 발달은 따라잡기가 어려워 기가 죽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96년 서울시 조기취학자 중 9.7%인 1백95명에 달했던 부적응 학생(중도탈락자)수는 97년 75명(4%)으로 줄었다가 98년에는 1백79명(5.4%)으로 다시 늘었다. 이들 대부분은 학습부진 정서불안 교우관계 건강 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원대 아동학과 박정옥교수는 “한 반에 2, 3명씩 있는 늑장입학 아동도 체력을 포함해 학업성취도면에서 크게 두드러진 것이 없고 부모들의 기대처럼 기가 살거나 리더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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