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사진전]말-글 필요없는 「순간의 저널리즘」

  • 입력 1998년 12월 24일 18시 56분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가까이 가서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토 저널리즘의 전설 로버트 카파가 전장(戰場)에서 남긴 말이다.

그는 스페인 내전 당시 병사가 총탄에 맞아 쓰러지는 찰라를 포착한 사진(‘쓰러지는 병사’) 한 장으로 전쟁의 비극을 사람들의 가슴에 화살처럼 꽂았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28일∼3월11일 열리는 퓰리처상 사진대전.

로버트 카파처럼 20세기 역사의 현장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 사진들을 접할 수 있다. 퓰리처상은 1917년 제정되었고 사진 부문은 42년 신설됐다.

전시작은 퓰리처상 사진부문의 수상작 1백28점과 카메라, 당시 신문 등. 퓰리처 수상작을 모두 모은 것은 세계 처음이다. 동아일보사 후원.

먼저 51년 수상 작품인 막스 데스포의 ‘한국전쟁’. 50년 12월, 폭격으로 너덜너덜해진 대동강 철교를 피난민들이 곡예하듯 건너는 아슬아슬한 장면을 담았다.

69년 수상작품 ‘사이공식 처형’은 권총을 맞는 순간, 희생자의 단발마 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에드워드 아담스가 찍은 이 사진은 알몸의 소녀가 폭격의 화염을 피해 울부짖으며 도망가는 사진(후잉 콩 우트·72년 수상)과 함께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 여론에 불을 지폈다.

94년 수상작품인 케빈 카터의 ‘수단의 굶주린 소녀’는 아프리카 내전의 참상을 고발했다. 굶주림 때문에 머리도 들지 못하는 소녀와 그 옆에서 침을 흘리며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독수리. 국제 원조도 수단의 독재정권 아래에서는 효과가 없었음을 이 사진은 증언하고 있다. 카터는 이 사진으로 상을 받았으나 셔터를 누르기 전 소녀를 도왔어야 했다는 세간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이밖에도 60년 10월 일본 사회당 아사누마 이나지로 위원장이 우익 소년 야마구치 오토야의 칼에 찔리는 장면을 포착한 ‘도쿄의 찌르기’, 63년 11월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용의자였던 리 오스월드가 저격당하는 장면, 96년 4월 미국 오클라호마시의 연방정부빌딩 폭탄테러 현장에서 한 소방관이 구조한 한살짜리 아이 등 역사의 맥박이 담긴 사진들이 즐비하다.

수상작들은 모두 개인 소장이어서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데 무려 10여년이란 기간이 소요됐다. 서울 전시가 끝나면 인천 광주 부산 대구 울산 춘천 등 전국순회전시로 이어진다. 02―597―2274

〈허 엽기자〉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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