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콘서트 「아줌마, 동숭동에서 길을 잃다」

  • 입력 1998년 12월 23일 19시 36분


“뱃속 아기도 열심히 노는 걸 보니 공연이 마음에 드나봐요.”

가수 양희은의 콘서트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출산예정일이 10일밖에 남지 않은 주부 관객 남성희씨(32·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말이다.

‘아줌마, 동숭동에서 길을 잃다’라는 제목을 가진 이 콘서트가 ‘아줌마 부대’의 열렬한 성원 속에 매진사례를 거듭하며 불황에 시달리는 공연가에서 이변을 연출하고 있다. 16일 이 공연을 찾은 남성 관객은 단 두명. 직장 여자동료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아저씨’와 엄마를 따라 온 3살배기 뿐이었다.

올해말까지 크리스마스 등 연말특수를 겨냥해 예정된 콘서트는 50여개. 그러나 매진사례는 조용필 나훈아 정도였고 대부분 “표가 팔리지 않는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실정이다.

그러나 매주 수요일 오후 3시에 시작되는 양희은의 주부를 위한 특별공연은 이미 2주전에 표가 매진됐다. 2백여석의 객석이 꽉찬 상태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대기 관객을 위해 40여석의 보조석을 따로 만들어 입장시키고 있다.

불황 속 인기바람의 비결은 무엇일까. 가요계에서는 “고객에 대한 특별한 분석없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진 콘서트들이 대부분 기대치를 밑도는 성적을 거뒀다”면서 “양희은의 캐릭터에 맞는 주부층을 파고 든 것이 성공의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남편들이 한 직장에 다니는 주부들의 모임인 ‘개토리(개밥에 도토리를 줄인 말)’는 연말 송년 모임을 아예 콘서트로 대체했다. 30대의 한 주부는 “남편들 위주로 꾸려지는 모임은 재미가 없고 지루하다”면서 “콘서트로 문화생활에 대한 갈증도 풀고 친목도 즐길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고 말했다.

공연장 주변에서 각종 계모임을 비롯해 여고동창회와 사은회 등 보고 싶었던 이들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양희은은 “중년 관객들은 요즘 젊은 세대와 달리 ‘나쁜 놈’ 만나도 고쳐가며 살아가는 인정과 의리가 있다”면서 “노래만 있는 콘서트가 아니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호응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31일까지 02―3272―2334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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