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에 보내는 풍자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 입력 1998년 11월 30일 19시 41분


“…이문열, 이인화, 조갑제. 그래도 대한국민학교 우익반(班)에선 이만한 수재가 없다. 이 반은 특히 역사수업에 상당한 지장이 있는데, 이는 이 학급 아동들의 ‘역사 아끼기’라는 괴벽 때문이다. 가령 이문열 학동은 졸업도 못하고 여태 ‘조선왕조 선조연간’을 배우고 있고, 이인화는 그래도 ‘정조대왕’까지는 나갔다. 문제는 조갑제 학동인데, 이 학동은 이제야 원나라 지배하의 고려시대에 와있다. 그는 걸핏하면 면학 분위기를 깨고 징타령을 한다.‘징, 징, 징, 징기스칸….’”

개마고원에서 펴낸 화제의 책,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저 멀리, 베를린에서 우리 시대의 우익인사들에게 띄워 보내는 편지다. 발신인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박사과정(철학)을 밟고 있는 진중권씨. 편지 제목은 조갑제의 실명소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패러디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들 우익인사들의 논리가 언뜻 아시아적 가치나 유교 자본주의론을 내세우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전체주의에 뿌리가 닿아 있다고 말한다. 이문열이 ‘선택’에서 봉건적 가부장 독재를 합리화하면, 이인화가 ‘인간의 길’을 통해 박정희를 낭만적 영웅이자 악마주의적 지도자로 둔갑시키고 이어, 조갑제가 ‘몽골인종주의+동양우월주의+군국주의’로 분식(粉飾)된 박정희 신화에 불을 지핀다는 것.

저자는 이들을 비판하기 보다는 ‘풍자’한다. 숭고, 비장, 운명, 영웅, 초인 등등…, 비과학적이고 주관적인 용어로 가득찬 이들의 주장과 이념은 학문적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순문학의 영역인 풍자의 대상이라는 것. “이 비장하고 숭고한 봉건 파시스트를 퇴치하는 데는 웃음만한 무기가 없다. 이들은 웃음을 두려워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전공하는 저자. 그는 이들을 반박하면서 스스로의 말이나 주장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고 모순에 빠지도록 하는 ‘텍스트 해체전략’을 즐겨 쓴다.

“…박정희가 ‘천재’라고 주장하니 천재 박정희의 사범학교 시절 성적을 봅시다. ‘1학년 60등/90명, 2학년 47등/80명, 3학년 67등/74명, 4학년 73등/73명, 5학년 69등/70명’

누가 봐도 잘했다고 할 수 없죠? 천재의 성적표로 보기엔 무리가 있죠? 근데, 이 성적을 ‘박정희 전문가’ 조갑제가 어떻게 평가하는지 봅시다. ‘5학년 때만 장기결석을 41일이나 하고도 이 정도 점수를 받았다는 것은 그의 머리가 좋다는 증거가 되었다….’”

〈이기우기자〉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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