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작가 문제의식,「자아탐구」로만 보지마세요』

  • 입력 1998년 11월 25일 19시 22분


11월 만추의 뜰에서 만난 은희경(39)과 김형경(38). 음력으로 따져 돼지띠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늦깎이’ 작가다. 김형경은 85년 등단했지만 본격활동은 93년 이후. 은희경은 95년 동아신춘문예 당선으로 데뷔했다.

늦은 출발을 단번에 보상하려는 듯 왕성한 활동을 펼쳐온 두 사람은 최근 자신들의 첫 신문연재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은희경·문학동네)와 ‘피리새는 피리가 없다’(김형경·한겨레신문사)를 나란히 책으로 펴냈다.

그러나 비슷한 행보의 동년배 여성소설가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90년대 여성작가’라는 상투적인 수식어를 붙이는 일은 온당한가. 두 사람은 이런 시선에 할 말이 많았다.

“한 출판사 편집회의에서 요즘 여성작가 작품은 이름만 가리면 누구 것인지 구분이 안된다고 비꼬았다더군요. 하지만 남성이 쓰면 인간성 탐구고 여성이 쓰면 무조건 자아정체성 탐구라는 식의 선입견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은희경)

“여성에게 있어 30대 초중반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性)정체성을 자각하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30대 여성작가들의 작품이 비슷해 보이는 것도 이것 때문이겠죠. 하지만 일정기간의 내면탐구가 끝나고 나면 가는 길들이 제각각 달라질 거라고 봐요.”(김형경)

두 사람의 작품관만 해도 많이 다르다. 김형경은 “작품 폭을 넓히기 위해 역사소설에 한번 도전해보겠다”지만 은희경은 “역사나 사회를 다룬 거대서사를 써야만 역량있는 작가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는 입장. 은희경은 김형경 소설을 읽으며 “문학 정통에 충실하려는 반듯한 자세”에 감복하고 김형경은 “은희경 소설의 탁월한 연애심리묘사를 읽으며 인간관계의 본질을 배운다”고 말했다.

신작에서도 두 사람의 차이는 뚜렷하다. 은희경은 96년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마지막 춤…’에서 이혼경력이 있는 30대 여교수 진희의 연애를 통해 성숙한 사랑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신랄하되 진지한 자세로 탐구한다. 김형경의 ‘피리새…’는 노래에 삶을 거는 젊은이와 가요계의 스타생산 매커니즘을 해부하며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라는 이분법이 허위의식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서로의 차이를 하나하나 꼽아가던 두 사람은 여고동창회에 얘기가 이르자 “이래서 똑같단 소리를 듣지”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졸업 20주년 기념 동창회에 갔더니 ‘나 살아온 얘기 좀 소설로 쓸 수 없냐’고 하소연하는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었어요. 언젠가 그걸 소재로 ‘한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짚어보고 싶었는데….”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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