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주제 사라마구]「포르투갈의 정체성」설파

  • 입력 1998년 10월 9일 19시 15분


포르투갈의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76)가 95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포르투갈 출신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사라마구가 처음이다.

8일 그를 수상자로 지명한 스웨덴 한림원은 “사라마구는 상상력과 따뜻한 시선, 아이러니가 풍부한 우화적인 작품으로 허구적 현실의 묘미를 맛보게 해주었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한때 스페인과 더불어 세계의 정복자로 번영을 구가했지만 지금은 유럽공동체의 가난한 변방국가로 처지고 만 포르투갈. 사라마구는 그 쇠락한 조국에 영광을 안겼다. 특히 98년은 포르투갈의 위대한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항로를 발견한 지 5백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라 포르투갈 국민의 기쁨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사라마구는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포르투갈이 유럽연합공동체(EU)에 끼어들기 위해 전전긍긍하기 보다는 ‘과거 위대한 세계시민이었던 포르투갈인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의 이러한 메시지는 또 한사람의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온 소설가 안토니오 로보 안투네스 등 포르투갈 현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왔다.

사라마구는 22년 포르투갈 중부 지역에서 태어나 3세때 수도 리스본으로 이주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던 그는 일찍부터 습작을 시작했지만 고등학교만 마치고 기능공 공무원 번역가 평론가 신문기자 잡지사와 출판사의 편집위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해야 했다. 이런 성장과정은 사라마구를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입장에 서게 해 그는 장년기까지 맹렬한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다.

사라마구는 47년 첫 소설 ‘죄악의 땅’을 발표했으나 우파독재자 살라자르 시절 내내 문학인으로 보다는 정치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문학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66년 ‘가능한 시’라는 시집을 발표하면서부터. 이후 그는 시 소설 희곡 콩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발표했지만 문학적 명성을 공고히 한 작품은 80년작 ‘바닥에서 일어서서’다. 이후 ‘수도원의 비망록’(82년)‘돌로 만든 뗏목’(86년) 등이 잇따라 크게 인기를 얻으며 그의 작품은 25개 국어로 번역되기에 이른다. 특히 18세기의 흉악한 종교재판을 그린 ‘수도원의 비망록’(영어명 ‘발타사르와 블리문다)은 오페라‘블리문다’로 만들어져 90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극장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부산외국어대 김용재교수(포르투갈어과)는 “사라마구의 작품세계를 이루는 4개의 축은 ‘시간’ ‘초자연’ ‘담론의 연속성’ ‘여행’”이라고 분석한다.

사라마구는 과거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지만 동시에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이중적 논리에 서 있다. 그의 성(姓)사라마구가 아버지의 실제 성이 아닌 별명을 붙인 것이라는 사실은 과거에 회의적이지만 그것을 부정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

그의 작품은 독자들을 몹시 긴장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설속에 쓰이는 문장부호는 마침표와 쉼표 뿐. 직간접 화법조차 구분하지 않는다. 거기에 사실주의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사실의 세계에 얽매이지 않고 초자연적인 요소까지 수용하는 거대한 상상력을 펼쳐보인다. 지금껏 사라마구의 작품을 출판하려 했던 국내 출판사들은 이런 난해성때문에 손을 들고 말았다.

93년 리스본을 떠나 카나리아제도의 란자로트로 이주한 사라마구는 가끔 딸을 만나기 위해 리스본을 방문할 뿐 6년전 재혼한 30년 연하의 스페인기자 출신 아내 필라와 자연 속에 파묻혀 산다. 이 곳에서의 상념을 적은 수상록 ‘란자로트 일기’는 그의 최근 주요 작품이다.

한편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상금은 7백60만크로나(약12억8천만원)이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사라마구 작품 연보]

▼소설

△서도(書道)와 회화안내서(1977)

△바닥에서 일어서서(1980)

△수도원 비망록(1982)

△히카르두 헤이스의 사망 연도(1984)

△돌로 만든 뗏목(1986)

△리스본성(城)의 역사(1989)

△예수의 제2복음(1991)

△실명(失明)에 대한 에세이(1995)

▼시

△가능한 시(1966)

△아마도 즐거움(1970)

△1993년(1975)

▼희곡

△밤(1979)

△이 책으로 무엇을 하리?(1980)

△프란시스쿠 아시스의 두번째 삶(1987)

△신의 이름으로(1993)

▼평론

△이 세상과 다른 세상(1971)

△여행자의 가방(1973)

△DL이 가졌던 의견들(1974)

△메모(1976)

[사라마구 수상 경력]

△포르투갈 올해의 희곡상(1979·수상작 ‘밤’)

△포르투갈 리스본 문학상(1980·수상작 ‘바닥에서 일어서서’)

△포르투갈 펜클럽상, 리스본 문학상(1982·수상작 ‘수도원 비망록’)

△포르투갈 펜클럽상, 포르투갈 비평가협회상(1986·수상작 ‘히카르두 헤이스의 사망 연도’)

△포르투갈 작가협회 소설 대상(1992·수상작 ‘예수의 제2복음’)

△영국 독립외국소설상(1993·수상작 ‘히카르두 헤이스의 사망 연도’)

△포르투갈 카몽이스상(1995·포르투갈의 최고 문학가에게 수여하는 상)

△이외에 프랑스 문학예술상 등 다수의 문학상 수상

(자료제공:부산외국어대 김용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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