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열풍/영화·TV]「여고괴담」등 예상밖 성공

  • 입력 1998년 9월 4일 19시 40분


올해 극장가에선 유별나다고 할 정도로 판타지 영화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판타지와는 거리가 멀던 한국영화에서의 판타지 붐은 주목할만 하다.

‘조용한 가족’ ‘여고괴담’ ‘퇴마록’이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는가 하면 제작중인 판타지 영화들도 줄을 섰다. 온갖 귀신들이 출몰하는 ‘자귀모(자살한 귀신들의 모임)’, 시인 이상의 시를 화두로 삼은 가상역사 미스테리물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핵잠수함을 무대로 한 스릴러물 ‘유령’….

영화에서의 판타지 붐은 한국에서만 그런게 아닌 모양이다. 미국에서 4주연속 박스 오피스1위를 차지하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밀어낸 영화는 반(半)뱀파이어(Vampire·흡혈귀), 반(半)인간이 피를 찾아 헤매는 만화같은 판타지 영화 ‘블레이드’였다.

국내의 판타지 붐은 영화보다 TV에서 먼저 시작됐다.

외화 ‘X파일’(KBS)은 오컬티즘(Occultism·신비주의)의 유행에 한 몫 했고 ‘다큐멘터리 이야기속으로’(MBC)와 ‘토요 미스테리 극장’(SBS)은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믿거나 말거나’류의 소재들로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영화와 TV에서의 판타지 붐은 IMF이후 불안정한 사회분위기와도 연관이 있다. 냉전과 전체주의적 정권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한 50년대 미국에서 외계인의 침략을 소재로 한 SF영화가 양산됐듯, 판타지 붐은 사회적 불안이 영화를 통해 대리표출되는 현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판타지는 무의식의 표현이다. 영화학자 수잔 헤이워드는 ‘판타지 영화는 우리가 억압하는 무의식의 영역과 꿈의 세계를 가장 쉽게 반영한다’고 했다. 미래의 윤곽이 그려지지 않는 뒤숭숭한 세기말, 판타지 영상물에 열광하며 우리들은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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