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르트 아줌마」 성실로 꽃핀 그대 아름다워라

  • 입력 1998년 8월 16일 19시 32분


초보야쿠르트 아줌마 강미현씨(34). 폭우가 쏟아지는 새벽을 헤치며 며칠전 인천 율도부두로 나갔다. 다행히 영종도로 가는 배는 뜬단다. 세계적 규모의 신공항건설현장에 도착해 배달을 시작하니 만나는 사람마다 놀라는 표정. “대단하시네요, 이렇게 비가 퍼붓는데도 오시다니…”

강씨가 야쿠르트배달을 생각한 건 전에 하던 꽃배달사업의 매출이 IMF사태로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지면서부터. 영종도에 꽃배달을 하다 이곳에 야쿠르트아줌마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석달 전 동인천직매소를 찾은 뒤 지금까지 확보한 고객은 5백50여명. 월수입은 단숨에 2백만원을 뛰어넘었다. 꽃배달의 경험을 살려 고객의 생일에 장미꽃 한송이를 선물하고 직원의 도움을 받아 공단 전산망게시판에 안내문을 띄우는 등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인 결과였다. 그는 “올해 안에 판매량을 두배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기염.

판매왕으로 지난해 뽑힌 신현례씨(45). 다섯달 동안의 특별판촉기간 동안 1억여원 어치의 야쿠르트를 팔았다. 신씨는 상품으로 티코승용차를 받았다. 한개에 1백10원 짜리 야쿠르트를 팔아 1억원을 거두려면 90만9천여개를 판매해야 한다. 가장 비싼 7백원짜리 메치니코프를 팔아도 14만2천8백57개.

그렇다고 부자 동네에서 일하느냐, 아니다. 17년 동안 서울 성동구 금호동의 주택가에서 성실히 일하면서 쌓은 인간관계 덕분이었다.

손에서손으로. 야쿠르트 아줌마가 되면 맨먼저 교육받는 제품 전달의 제1원칙이다. 직업의 생명인 ‘정이 있는 인간관계’를 만들기 위한 기본 규칙인 셈.

매일 평균 2백∼2백50여명의 고객들과 만나다 보면 야쿠르트 아줌마는 자연스레 맡은 구역의 사정을 훤히 알게 된다. 또래 아줌마의 가정사를 상담해주는 카운슬러 역할을 하는가 하면 중매를 서는 일도 있다. 소년소녀가장과 무의탁노인들을 남몰래 도와주는 일도 흔하다.

부산에서 야쿠르트를 배달하는 석실화씨(47)는 얼마전 “엄마를 찾아달라”는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을 만났다. 다섯살 무렵 부모가 이혼해 어머니와 헤어졌는데 어머니가 이 동네에서 야쿠르트를 마셨다는 기억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수소문한 결과 다른 구역에 딸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고객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야쿠르트 아줌마를 통한 극적인 모녀상봉은 이렇게 이뤄졌다.

1만1백명의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전국에 촘촘히 퍼져있다. 이들은 국회에서 달동네까지 어디든 간다. 매일 가정과 직장에서 만나 야쿠르트 메치니코프 등 유산균발효유를 건네주는 사람은 2백30여만명. 한집에서 여러개를 마시는 경우가 많아 하루 7백여만개의 유산균발효유가 고객의 손에 건네진다.

야쿠르트 아줌마 1만여명이 쌓아올린 끈끈한 인간관계 덕분에 ㈜한국야쿠르트는 극심한 불황에도 별 타격을 받지 않고 있다. 이처럼 회사의 흥망이 걸린 소중한 존재. 밖에서의 호칭은 ‘아줌마’지만 사내에서의 호칭은 ‘여사님’이다. ‘여사님’에 대해 회사에서 중요하게 평가하는 부분은 많이 파는 것보다 성실하게 오래 근무하는 것. 판매실적이 나쁘더라도 월 1백만∼1백20만원의 수입이 보장되도록 구역을 조정해준다. 근속기간 5년이 넘으면 제주도 여행을 보내주고 10년이 넘으면 일본 연수, 20년이 넘으면 동남아 여행. 25년간 일해 미국여행을 다녀온 36명은 지금도 야쿠르트를 배달하고 있다.

〈김홍중기자〉kima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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