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쎄실「산씻김」, 취리히 세계연극제 공연

입력 1998-07-03 19:30수정 2009-09-25 08:33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박수치는 관객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공포와 매혹, 신비감과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인 표정. 2일 밤8시(현지시각) 극단 쎄실의 ‘산씻김’(연출 채윤일)이 공연된 스위스 취리히 시내 노이마르크트 극장 객석의 풍경이었다.

지난달 26일부터 계속되고 있는 ‘98 취리히 세계연극제’. 15개국 24개 초청작품중 열두번째 프로그램으로 무대에 올려진 ‘산씻김’에 대해 취리히 관객들은 “긴장을 멈출 수 없게 하는 연극” “끊임없이 주의를 집중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산씻김’은 지난해 서울세계연극제를 참관한 취리히세계연극제 집행위원들이 고른 단 한편의 한국작품. 한국연극으로서는 첫 스위스 무대 진출인 이날 객석에는 권순대 주 스위스 대사부부 등 20여명의 교민들이 자리를 함께해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81년 초연된 ‘산씻김’은 이미 국내에서 여러차례 공연된 화제작이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고장나 낯선 집을 찾아든 여인이 사교(邪敎)집단의 여인들에게 붙잡혀 산 채로 씻김굿을 당한 뒤 그들에 동화된다는 줄거리.

이야기 전개과정에 대한 일체의 정보없이 객석에 앉아있던 관객들은 극 초반 무당(하도희 분)이 커다란 신칼을 들고 나타나거나 청진기와 수술용 가위 등 어울리지 않는 ‘제례도구’들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을 때만 해도 ‘이게 무슨 아이러니극이지?’하는 뜻의 웃음을 간간이 터뜨렸다.

그러나 희생자 여인(이미정)이 사지가 묶인 채 ‘씻김’을 당하지 않으려고 저항하는 과정부터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특히 무당을 도와 제의를 진행하는 네 소녀역의 정소희 김정아 조영심 김정희의 무가(巫歌)와 춤, 이들이 연주하는 당방울과 징의 독특한 울림은 객석의 긴장을 한층 고조시켰다.

“전통과 현대 두 이질적인 문화가 충돌하고 통합되는 과정이 샤머니즘 의식을 통해 대단히 역동적으로 표현됐다.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온 여인이 처음에는 저항하던 ‘안의 문화’에 통합되지만 그로써 자신의 개성도 잃고 만다는 내용이 주는 메시지가 크다.”(라인하르트 리들·문화웹진 ‘피에올’편집장)

“연극을 보면서 편안히 몰입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야했다. 의미있는 질문을 많이 남기는 작품이었다.”(이고르 질린칸·취리히대 학생)

81년 창작 당시 작가 이현화의 의도는 서슬 퍼렇던 5공정권에 대한 우회적 저항이었다. 부제 ‘하나의 오보에를 위한 A’가 암시하듯 오케스트라를 튜닝하는 오보에의 A음같은 획일적 기준으로 전국민을 몰아치는 군사정권의 광기를 고발했던 것.

당시의 억압적 분위기를 씻김굿의 변형된 형태로 표현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극의 의미는 ‘현대성과 전통’ ‘구세대와 신세대’ 등 이질적인 요소간의 충돌로 재해석되고 있다. 연출가 채윤일은 “하나의 작품이 다면적으로 해석된다는 것은 시대와 국경을 넘어 오래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며 스위스 관객들의 ‘다양한 해법’을 반가워했다.

‘산씻김’제작진은 취리히 세계연극제와는 별개로 3개 도시에서 추가공연요청을 받았다. 취리히 공연 이전 라쇼드퐁과 제네바에서 공연을 마쳤고 3일 취리히 공연 이후에는 이탈리아 접경지역의 벨린초나로 이동해 마지막 공연을 펼친다.

〈취리히〓정은령기자〉ryung@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