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영화기획 이황림-김광수씨『「올빼미」영화팬 모여라』

  • 입력 1998년 6월 17일 08시 07분


밤이 살아난다. 주말 자정이 되면 은밀한 제의(祭儀)에 참석하는 사도(使徒)들처럼 관객들이 심야극장으로 모여든다.

영화 심야상영은 요즘 극장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풍경이다.낮에 흥행이 부진했던 영화들이 심야에 관객몰이에 성공하는 기현상도 종종 눈에 띈다.

한국최초의 영화 심야상영은 82년 ‘애마부인’. 그뒤 유행처럼 번졌던 심야상영은 88년 폐지됐다가 8년뒤인 96년 ‘이레이저 헤드’, 그리고 다음해의 ‘킹덤’으로 부활했다.

한국 최초의 심야영화를 탄생시킨 이황림씨(‘율가필름’대표),‘이레이저 헤드’ ‘킹덤’심야상영을 기획한 김광수씨(‘바른생활’실장). 두 사람이 세계 심야영화의 원조격이라 할 ‘록키 호러 픽쳐 쇼’에서 수입사 대표와 홍보기획자로 만났다.

82년 2월 서울극장에서 ‘애마(愛馬)’대신 ‘애마(愛麻)’라는 애꿎은 이름을 달고 개봉한 ‘애마부인’의 심야상영은 통금해제 기념으로 기획된 특별 이벤트였다.

“통금이 해제되고 그간 억눌렸던 게 터지니까 아주 난리가 났었어요. 그때 서울극장 좌석이 1천3석인데 심야상영 첫날 5천명이 몰렸으니까. 의정부 포천 여주에서까지 관객이 몰려드는 바람에 기마경찰대가 출동하고, 매표소 유리도 다 깨지고…”

당시 서울극장에서 기획을 맡았던 이대표는 심야상영허용이‘국풍81’ 등을 만들어내며 개혁의 이미지를 주입시키려 했던 군사정부의 유화 제스처였다고 회고한다.

서울극장에서 시작된 심야상영은 변두리 극장에 확산돼 인기를 누렸지만 청소년 탈선의 온상으로 변질되고 88년 범죄와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폐지됐다.

자취를 감추었던 ‘밤의 바이러스’가 다시 떠돌기 시작한 것은 96년 김실장이 서울 동숭아트홀에서 시도한 ‘이레이저 헤드’의 심야 무료시사회에서부터.

불법의 위험을 무릅쓰고 감행한 심야시사회의 폭발적인 반응에서 심야영화의 가능성을 본 김실장은 지난해 영화기획사 ‘R&I’에서 ‘킹덤’의 심야개봉을 기획해 전회매진, 좌석점유율 1백%의 진기록을 이끌어냈다.

그는 허리우드극장의 한국영화전용관에서도 심야 공포영화제를 기획했던 ‘밤 문화’의 전도사.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것도 ‘록키 호러 픽쳐 쇼’를 3년전에 수입하고도 묵혀두었던 이대표를 김실장이 불쑥 찾아가 “내가 홍보해야겠다”며 미리 만들어놓은 기획서를 들이밀어서였다.

최근의 심야영화 붐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생각은 “비로소 밤의 문화가 틀을 잡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옛날에는 여름에 새벽1시에 밖에 나가도 꼬마전구를 켜놓고 수박 쪼개먹고 냉면도 사먹는 밤의 문화가 있었다고 그리워하셨어요. 한국전쟁이후 남북대치상황과 정권에 의해 단절됐던 밤의 문화가 비로소 움을 틔우기 시작한 거죠”(이대표)

올 3월 소극장에 대한 규제도 ‘풍속에 관한 법률’에서 공연법으로 바뀌어 심야상영은 불법에서 벗어나게 됐다. 심야상영이 활성화되면 80년대처럼 에로영화도 판을 치겠지만 상영등급을 지키지 않는 극장에 대한 엄격한 제재로 심야상영이 건강한 문화로 발전하면 좋겠다는게 이들의 바람이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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