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에 담은 「전통美感」 전준엽화백 개인전

  • 입력 1998년 5월 6일 07시 33분


「빛의 정원에서」
「빛의 정원에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선비의 고졸(古拙)한 기품을 머금은 송백(松柏)과 사유의 여백.

전준엽화백(45)이 ‘빛의 정원에서’시리즈를 통해 추구하는 작품세계는 세한도의 선비정신과 통한다. 부제도 신세한도(新歲寒圖).

8∼12일 청작화랑(02―549―3112)에서 여는 개인전은 2년만. 모두 24점을 선보인다. 중견작가에게 주는 제1회 청작미술상 수상기념전이기도 하다.

전씨는 92년부터 ‘빛의 정원에서’에 매달려 왔다. 그에 대한 전씨의 설명.

“빛은 세상을 밝히는 희망이다. 그 빛이 내리는 이상향을 한국인의 미감(美感)에 맞는 산수화로 표현하고 싶었다.”

묵연(墨然)한 한 그루의 소나무. 한 척의 나룻배. 한국의 흙, 그림자처럼 표현된 사람 하나, 시리도록 푸른 바다. 흙내음 짙은 배경. 이들이 전씨의 조형 요소다. 토속적인 향취와 더불어 운필의 자유로움, 과감한 생략과 단순미가 격조를 높인다.

황토를 연상시키는 바탕은 장판이 모티브다. 한국인의 생로병사가 모두 장판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포착했다. 파란 바다는 맑은 심성을 은유하고 홀로 있는 소나무와 사람 하나는 삶의 고요와 평화를 나타낸다.

전씨는 한 작품을 위해 대여섯번 작업한다. 색감과 질감을 내기 위해 바탕색을 칠하고 스케치한 다음 색을 칠한다. 그래서 몇 점의 그림을 한꺼번에 시작한다. 전씨는 “복잡한 방식은 나만의 독창적인 조형 어법과 질감을 다듬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전씨는 그림이 잘 팔리는 중견 작가로 손꼽힌다. 92년 화랑미술제나 95년 마니프 국제아트페어에서 출품작이 대부분 나갔다. 그는 이에 대해 “한국의 미감을 찾는 나의 작품 세계를 인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한다.

유화 물감을 재료로 쓰는 그가 한국의 미감을 파고드는 이유. 그는 80년대 중반까지 민중미술계열에서 ‘운동’을 해왔다. 그러나 그의 예술적 열정은 이념을 사진처럼 복사하는 작업에 만족할 수 없었다. 87년 민중미술협의회를 뛰쳐 나왔다.

그로부터 4년 뒤 시작한 게 ‘빛의 정원에서’시리즈. 그 끝은 어디일까. 단군신화다. 50대에 접어들면 단군신화를 대작으로 구성하고 싶다고 한다.

〈허 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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