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빠 최고]6년째 육아일기 쓰는 남성학자 정채기씨

  • 입력 1998년 2월 2일 19시 38분


“현준아, 이 사진 언제 찍었더라?” “이거, 내 생일날 친구들 많이 왔을 때요.” 정채기씨(36·건국대 남성학 강사)는 아들 현준이(5)가 유아원에서 돌아오면 촘촘히 적어 놓은 육아일기를 함께 들춰본다. “이날 현준이 친구들이랑 뭐했어?” “정민이 영훈이랑 타잔놀이했어요.” 경기 하남시 창우동 현준이네 집. 정씨가 일기장을 넘기며 사진을 가리키면 현준이는 그날의 기억을 정확하게 되살려낸다. 정씨와 아내 서동미씨(28)가 일주일씩 교대로 써온 육아일기는 현준이가 태어나기 전날 시작해 단 하루도 빠짐없이 6년째 계속되고 있다. ‘아이가 기억해내지 못하는 어린시절의 일상을 남겨주기 위해서.’ ‘93년10월30일. 새벽 4시 전후 아내는 산고로 무척 힘들어 한다. 오전 10시11분 아내 드디어 아들 순산. 15분쯤 아들 확인.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기쁨과 감사를…. 이 떨리는 기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98년1월30일. 9층 정민이네로 놀러간 현준이는 ‘찬밥’신세가 된 모양이다. 지난 번엔 현준이의 얼굴을 할퀴어 놓았었는데. 어울리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이렇게 써 온 육아일기가 벌써 두툼한 대학노트로 여섯권째. 술을 마셔 일기를 쓰기 어려운 날이면 다음 날 아내의 도움을 받아 정리한 적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제일 힘든 경우는 여러 사람이 모이는 휴가 때나 명절. “항상 일기장을 가지고 다니는데 처음에는 다들 놀려요. 친구들이 ‘그래 너 잘났다. 너만 용돼라’나요.” 일기를 쓰는 일이 마냥 즐겁기만 하던 시기는 지났지만 이제는 그만 둘 수가 없다. 현준이도 동화책이나 만화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육아일기를 보며 ‘이게 언제였더라’하고 기억을 더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정씨는“아이가 일기를 써가며 스스로의 추억을 관리할 수 있을 때까지만 계속 써 주려고 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씨도 육아일기를 쓰다보니 아이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어 좋단다. ‘모성애를 여자만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로구나.’ 정씨의 ‘깨달음’은 부성애를 모성애와 동격으로 높이는 데까지 발전했다. “제가 다른 아빠들보다 아이에게 더 잘해주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자녀와 한번 멀어져버리면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더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지요.” 〈이나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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