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대의 본드 걸 『여성적 매력도 자기실현의 무기』

  • 입력 1998년 1월 6일 20시 19분


‘본드걸’. 영화 ‘007시리즈’에서 영국 첩보원 제임스 본드의 상대역을 맡는 여성에게 붙는 별칭. 여성의 매력을 스크린에서 상품화한 대표적 경우다. 여성의 매력과 성적 역할을 요구받는 ‘본드걸 관행’은 남성 중심의 많은 조직과 모임에 존재해 왔다. ‘피동적’ 본드걸. 과거의 전형이었다. N식품업체 경리사원 정모씨(26)는 입사 뒤 2년 동안 ‘본드걸’ 역할을 해야 했다. 사내 모임이 있을 때 남자직원들은 으레 부장 옆자리를 비워 놨다. 어쩌다 단란주점으로 모임이 이어지면 상사의 블루스 파트너가 되어야 했다. 정씨는 최근 신입 여사원이 배치되고 나서야 ‘본드걸’에서 벗어났다. ‘능동적’ 본드걸. 사회적 성공을 꿈꾸는 야심적 여성은 본드걸의 위치를 활용한다. 여성이라는 장점을 살려 윗사람과의 관계를 ‘본드’로 붙인 듯 돈독히 하는 경우다. 한 패션업체 마케팅팀의 김모씨(30). 자발적 능동적 본드걸의 대표적 유형이다. 그는 나름대로 자신있다고 생각하는 외모와 미소를 적극 활용한다. 구조조정 바람 속에 같은 부서의 몇몇 여사원이 회사를 떠났지만 그는 결과적으로 ‘건재’하다. 그는 “여성, 그것도 매력적 여성이라는 사실이 직장에서 유리할 때가 많다”고 주장한다. 상사와 밀착된 관계에서 여성이라는 점을 십분 이용하면 까다로운 결재를 매끄럽게 받아내거나 딱딱한 회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여성이 성적 매력을 직장에서 활용할 때의 문제? ‘야심있는 여자’ ‘정치적 여자’라는 남자 동료들의 따가운 눈총이다. 이미 ‘야심적 여성의 적〓남성’의 등식이 성립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기업컨설팅전문업체 퍼스널석세스아카데미 김원규원장은 “어학실력 등 능력이 비슷한데 아름다운 여성이 신입사원으로 공채됐다면 기업체는 그 사원의 ‘여성적 매력’을 사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남녀차별이 적은 사회나 직장일수록 오히려 여성의 매력이나 외모가 ‘+α’로 정당하게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김원장은 분석한다. 앞으로 여성이 직장에서 고위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지면 ‘본드맨’도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다는 것. 미국의 경우. 90년대 중반부터 ‘스타이넘주의’가 세력을 얻고 있다. 스타이넘주의는 여권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주창한 이론. 이전의 여권론자들이 여성적 아름다움을 ‘등한시’한 것과 달리 남성에게 메시지를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데 여성적 매력이 훌륭한 ‘무기’라는 것. ‘본드걸세태’에 대한 반론. 페미니스트저널 ‘if’의 박미라편집장은 “이미 외모로 인한 차별과 불이익을 여성들이 감내하고 있는 사회에서 외적 매력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내적 아름다움이나 개성이 제대로 이해될 수 있도록 사회 전체의 ‘시각 교정’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조직 속에서 여성의 매력은 온전히 거론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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