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거인 송진우선생 유품전…일민미술관서

  • 입력 1997년 12월 22일 20시 21분


『2천만 동포에게 고합니다. 민족적 이해를 타산하여 허무한 선전에 속지 말라』 일제가 조작해낸 「만보산(萬寶山)사건」에 현혹되지 말 것을 호소한 1931년7월7일자 동아일보 사설 제목. 만보산 사건은 수로(水路)문제로 중국인과 조선인이 충돌해 조선인이 부상했다는 내용을 조작해 한중간에 분쟁이 생기면 이를 빌미로 만주지역에 출병하려던 일제의 음모. 동아일보는 재빨리 이를 간파하고 음모를 폭로해 불상사를 막았다. 중국 국민당 정부 장제스(蔣介石)총통은 당시 고하 송진우(古下 宋鎭禹)동아일보 사장에게 감사의 뜻으로 「친인선린(親仁善隣)」이란 글귀를 새긴 은패를 보내왔다. 일제하에는 독립운동가로 언론인으로, 해방후에는 정치인으로 민족애를 실천했던 고하선생의 유품전이 23일부터 28일까지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02―721―7772)에서 열린다. 지기(知己)였던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선생이 집으로 찾아오면 바둑을 두며 시국을 논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바둑알과 바둑통, 「古下」라고 새겨진 낙관, 문갑 벼루, 대학시절 공책, 곁에 두고 즐겨 읽던 실학사상가 홍대용(洪大容)의 담헌집, 교유하던 사람들과 주고받은 엽서 등 30여점이 전시된다. 그가 암살된 뒤 그의 죽음을 슬퍼한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선생이 동아일보 사고를 내면서까지 전국에서 모아 보관하던 유품이 좌우익 대결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두 소실된 탓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고하의 유품과 함께 고하가 활동했던 시기의 한국 근대사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사진과 기사 등도 선보인다. 일제하 동아일보를 통해 충무공유적보존운동 등 많은 활동을 벌이며 민족정신을 심으려 했던 거인으로 문화체육부가 선정한 「이달의 문화인물」인 고하. 유품조차 넉넉하지 못한 현실이 한국 근대사의 아픔을 대변해준다. 〈조헌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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