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희박한 공기속으로」/에베레스트 등정 다큐

  • 입력 1997년 11월 20일 09시 04분


에베레스트. 지상의 제3극(極). 이 행성(行星)의 최정상. 이 세상 모든 물리적인 힘들의 화신(化身)…. 일체가 파괴되고 무너지는 세계. 물은 흐르지 않고 어떠한 식물도 자라지 않는 곳. 둔중함과 거침으로 빚어내는 무한의 중량감만이 영하 70도의 침묵을 가로지른다. 가파르게 치솟아 오른 암벽. 그 사이사이로, 깊게 갈라진 상처를 드러내며 희뿌연 하늘을 치받는 송곳니. 상처자국의 가장자리를 타고 수직으로 흐르는 「눈 지느러미」의 성난 포효…. 「시속 1백20노트의 강풍 속에서 반짝이는 얼음조각들이 스카프자락처럼 휘날리며, 하늘을 나는 제트 여객기와 정확히 같은 고도에서 눈을 맞춘다…」. 왜 에베레스트인가. 왜 목숨을 내던지는가. 등반가 조지 맬로니는 단지, 「그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산악인들에게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그들에겐 단 하나, 거역할 수 없는 충동이 꿈틀거릴 뿐. 「그들은 해왕성(海王星)의 사람들로 불린다. 그들은 거대한 암석에 서식하는 이끼처럼, 스스로의 줄에 묶인 채 살아간다. 그들은 죽고 사는 문제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암벽을 오르내리며 순간적으로 마주치는 영광의 구름에만 시선을 둔다. 그들에게 환희와 희열은 오로지 해왕성에 존재한다. 높은 곳에 오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는 바로 그 행성에만…」. 작가이며 등반가인 존 크라카우어. 그가 기자적 감각으로 정밀하게 묘사한 에베레스트 조난기 「희박한 공기 속으로」(황금가지 펴냄). 일반인들을 위해 상업적으로 조직된 에베레스트 등반대의, 단 5분 차이로 생사가 갈렸던 긴박한 순간 순간의 기록을 사진을 찍듯 생생하게 담았다. 96년5월10일, 그와 함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일행 5명 가운데 4명은 목숨을 잃었다. 이 책은 저자가 등반대의 조난을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에베레스트를오르는과정전체, 에베레스트 등반과관련된모든 사람들, 에베레스트 등반의전 역사를 아우른 산악문학의 쾌거로꼽히고 있다. 「베이스 캠프가 있는 해발 5,400m의 산소농도는 해수면의 반밖에 되지 않는다. 8,848m의 공기농도는 해수면의 삼분의 일에 불과하다. 몸은 영양분의 결핍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축내고, 팔과 다리는 막대기처럼 말라붙는다. 어디선가 신음이 들려온다. 누군가 내 두 눈 사이에 못을 두드려 박는 것 같아…」. 에베레스트에도 음악은 있다. 녹은 물이 빙하 표면과 내면의 수많은 수로를 세차게 흐르면서, 빙하의 몸통을 악기삼아 뿜어내는 음산한 음향의 하모니. 눈을 붙이려고 자리에 누우면, 그들이 암반 위가 아니라 얼음의 강위에 떠있음을 알리는, 끽끽거리는 밤의 연가가 귓전을 긁는다.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일행중 한명은 수술한 눈이 악화돼 1m 앞을 볼 수 없는 극한상황에서도 동료의 발자국을 쫓아 등정을 계속한다. 더욱 더 희박한 공기 속으로(인투 신 에어)…. 오로지, 이 진부한 「삶의 평면」을 뒤집어엎기 위해서…. 산을 오를 때뿐만 아니라 내려가는 동안에도 의지력은 무뎌지기만 한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목표」는 점점 더 하찮은 것으로 여겨지고 스스로에게 무관심해지는 자신을 느낀다. 마침내 정신적인 피로감이 육체적인 피로감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해가 지면 외로움이 찾아든다. 그럴 때는 흡사 나의 전 생애가 내 뒤에 펼쳐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나는 일단 산에 오르기만하면 이런 기분은 사라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아니,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따금, 결국 내가 찾는 것은, 뒤로 남겨놓고 온 어떤 것이라는 걸 깨닫기 위해, 이렇게 멀리까지 온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밀려왔다…」.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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