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축제」,중년의 사랑 기대 관객 『실망』

  • 입력 1997년 11월 4일 07시 36분


쏟아지는 빗속에 중년의 남녀가 따뜻하게 포옹한채 미소짓는 포스터. 신선한 기쁨에 떠는 표정으로 보아 곰삭을 대로 곰삭은 사이, 부부는 아닌 것 같다. 제목도 「비오는 날의 축제」. 이호재와 윤소정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이후 1년만에 만나 사랑과 이별을 나눈다니, 예비관객들이 「중년의 사랑 연극」쯤으로 짐작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지난 9월말부터 서울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공연중인 이 연극에는 실제로 중년의 주부관객들이 많이 몰린다. 들뜬 표정으로 비슷한 연배의 극중 주인공을 지켜보던 이들은 그러나 연극이 끝나고 극장을 나올 때는 뭔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속았어. 사랑얘기가 아니잖아!』 마치 실연을 당한 듯한 얼굴.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못지않은, 가슴저미는 중년의 사랑이야기를 들어줄 준비를 하고 공연장을 찾았으나 끝끝내 둘이 사랑하는 「장면」은커녕, 대사나 느낌도 충분히 뵈주지 않아 못내 허전하다는 태도들이다. 극단 신화의 김태수 작 김영수 연출의 이 연극은 굳이 분류하자면 멜로드라마 보다는 사이코드라마에 속한다. 가슴속에 아픔을 안고 사는 두 중년남녀가 등장하되 불꽃튀는 사랑은커녕 온돌같은 사랑도 등장하지 않는다. 정신대출신의 어머니를 둔 최교수(이호재 분)가 나이 50이 되도록 그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해 여자에 대한 혐오감을 안은채 술독에 빠져 지내는 얘기가 나오고 정신과 의사인 여자(윤소정)가 그의 과거를 추적하나 7년이나 지나서야 치유할 수 있다는 결말이 뒤를 잇는다. 지금 생각해보니 둘은 서로 사랑하고 있었고 앞으로 본격적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같다는 독백이 따라붙고…. 이호재 윤소정의 연기는 따뜻하고도 섬세하지만 관객을 설득하는데는 실패했다. 사춘기 소년도 아닌 중년의 교수가 성적 강박증을 매달고 다니는 것도 억지스럽다. 멜로드라마에 익숙한 작가가 강제로 역사의식을 덧붙이고 연출자가 사이코드라마적 기법을 보여주겠노라며 잔뜩 소매를 걷어붙인 것 같아 보기에 버겁다. 차라리 관객이 원하는 대로 진한 중년의 사랑을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꼭 역사와 환경, 인간의 본질을 들먹여야 격조있는 연극은 아닐터이므로. 9일까지 화수 오후7시, 목∼토 오후3시 7시, 일 오후3시. 02―923―2131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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