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정지용,北서도 「복권」

  • 입력 1997년 10월 10일 09시 02분


「향수」의 시인 정지용(鄭芝溶·1903∼?)이 북한에서도 「복권」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북한에서 방송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정지용의 3남 구인(求寅·64)씨의 신문기고문을 통해서 알려졌다. 이 기고문은 「지용문학제」를 주관하는 옥천문화원이 최근 중국 연변일보기자로부터 입수한 것으로 북한 통일신보 95년10월2일자. 구인씨는 정시인의 8남매중 막내로 6.25당시 배재중학생이었으나 행방불명된 뒤 가족들도 생사를 모르고 있었다. 정시인의 「북한내 복권」은 90년대 초반 이후 국내북한문학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북한문헌과 해외학술회의에서 접촉한 북한학자들의 발언을 통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져 왔다. 따라서 이번 기고문은 국내학계의 지금까지의 추정을 재확인시켜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구인씨는 기고문에서 『92년 김정일장군님께서 「주체문학론」(조선노동당출판사)을 발표하시어 일제시기에 진보적인 작품을 창작한 신채호 한용운 김억 김소월과 함께 저의 아버지 정지용의 이름을 드시면서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공정하게 평가하는 크나큰 온정을 베풀어주시었다』고 말했다. 구인씨는 또 「향수」를 전문 인용하며 『통속적인 시어로 고향산천을 노래하면서 민족정신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우리 겨레의 숭고한 사상감정을 담고 있다』고 써 북한에서도 애송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복권된 여러 시인들 중 정시인에 대한 북한당국의 평가가 남다르다는 것도 확인된다. 구인씨는 94년5월 자신의 환갑때 김정일이 친히 잔칫상을 차려주면서 『시인 정지용은 1920년대와 30년대 창작활동을 한 애국시인의 한 사람이었다고 분에 넘치는 평가도 해주시었다』고 밝혔다. 북한의 「정지용우대」는 상당부분 88년 남한에서 정시인이 먼저 해금된 것을 의식한 것이라는 대목도 엿보인다. 기고문은 『남조선위정자들은 나의 아버지가 납북당했고 공산주의자들이 민족문화유산들을 청산해버렸다고 악선전을 벌인다』고 비난했다. 또 정시인의 사망경위에 관해서도 『북으로 오던 중 소요산 기슭에서 미군의 비행기 기총탄에 맞아 숨을 거뒀다』고 주장했다. 북한에서 「정지용복권」의 이유는 무엇일까. 남북한 현대시를 비교연구한 김재홍교수(경희대)는 『김정일은 이미 80년대 말 사상성 당파성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인민의 정서를 반영하는 시를 써야 한다며 서정시 옹호론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북한문학전문가인 평론가 김재용씨는 『북한당국이 80년대 후반부터 정시인에 대한 해금을 준비해오다 91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발간된 「근대현대문학사」(은종섭 저)에서 최초로 공식언급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분단이후 남북 양쪽의 문학사에서 모두 삭제됐다가 이제는 남북에서 모두 복권돼 이데올로기 때문에 일그러졌던 우리 문학사가 바로 잡힌 좋은 예』라고 평가했다. 북한당국의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정시인의 단행본시집은 아직 발간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93년 발간된 「현대조선문학선집」의 「20년대 아동문학」부문에 최초로 동시 10편이 수록돼 있으며 이 중에는 남한에 알려지지 않은 「굴뚝새」(26년 「신소년」게재) 등의 작품이 포함돼 있다. 한편 남한에 살고있는 정시인의 장남 구관(求寬·69)씨는 『죽은 줄만 알았던 동생의 소식을 확인하니 꿈만같다』며 『다만 동생의 기고문을 빌미로 새삼스레 월북설 등이 제기될까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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