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세기말]新문명의 여명인가… 파국의 혼돈인가…

  • 입력 1997년 10월 6일 20시 24분


1997년 가을, 세기말. 새로운 천년을 눈앞에 둔 기대와 희망의 시대인가. 아니면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말처럼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는 「산사태」의 시대인가. 다들 세기말이라는 한 마디에 「위기」 「변혁」을 감지하는 마술에 휘말리는 것은 아닌지. 문명의 찬란한 깃발 아래 무참히 파괴되는 자연. 인간복제의 환호 저편으로 추락해가는 생명에의 경외감. 끝없이 질주하는 과학기술의 뒤편으로 드리워지는 인간성 피폐의 그림자. 자본주의적 풍요와 제삼세계의 굶주림이라는 콘트라스트. 자본의 시대 그 엄청난 생산의 잉여를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 직전에 이른 물질적 욕구 그리고 소비문화. 마약 집단광기 등 탐욕의 나락과 자아분열에 빠져드는 대중. 가부장적 권위의 가정과 사회 속에서 여전히 굴레에 갇혀 있는 여성. 흔들리는 정체성. 정보만 남고 진리는 사라져버린 학문. 환경의 종말과 자본주의 위기설의 대두에 이르기까지. 세기말 징후들이다. 역사는 정녕 스스로 경신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린 것일까. 자연환경과 생태계 위기는 세기말 불안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정보화 과학화로 세계는 지구촌이 되고 문명의 세기를 이뤘지만 지구 한쪽의 나비 한마리의 날갯짓이 반대편에 폭풍우를 가져올 수 있다는 「나비효과이론」처럼 지구는 이제 어느 한곳도 독자적으로 태평성대를 구가할 수 없게 됐다. 전지구적 생태계 위기는 지금의 세기말을 19세기의 세기말과 구분짓는 한 특징이기도 하다. 홉스봄은 『인류가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세번째 밀레니엄을 건설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과학기술문명의 타도만이 「산사태」를 막을 수 있다면서 「반문명」을 선언하는 자도 생겨났다. 지금 세기말 위기의 모든 징후는 서구적 「근대성」의 후유증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위기론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서구적 근대(모더니즘)란 합리적 이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바탕으로 자본주의와 과학을 추구했던 시대다. 인간의 자연 착취, 서구백인의 제삼세계 억압, 남성의 여성 억압, 국가권력의 개인 억압 등을 상처로 남긴 시대이기도 하다. 온세계가 근대와 세기말을 넘어서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지만 그것도 만만치 않다. 극단적인 반문명 반과학을 논하는 사람도 있지만 가속도를 지닌 과학기술문명의 속성상 인간의 힘으로 그 무한질주를 막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생각도 적지않다. 과학에의 철저한 거부는 오히려 엄청난 반작용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그 후유증은 새로운 과학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자본주의의 황혼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이후에 대한 명쾌한 전망도 잘 보이지 않는다. 당분간 물질의 소비를 지켜보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 이와 함께 근대의 합리적 이성에 대한 안티테제로 반이성(비합리주의)에 탐닉하는 것 역시 세기말의 또다른 위기라는 지적도 있다. 극단적 맹목적 비합리주의의 양상인 자기도취 환락 광기 등이 결국 자본주의적 소비에 빠져드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세기말. 정녕 파국인가. 신문명의 도래인가. 그리고 그 대안은. 최근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을 주도했던 최종욱 국민대교수(철학)는 『서구의 근대성의 정체와 우리 사회의 근대성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세기말 위기진단 및 극복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독일의 사회철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는 『그래도 역시 이성』이라고 말하지만 원칙론으로 들릴뿐 명쾌한 것은 없다. 안개 속 같은 불확실성이지만 대안 모색은 꾸준하다. 우선 생태계위기 극복 논의가 주목할 만하다. 최근엔 기존의 일차원적 환경보호차원을 벗어나려는 생명운동, 나아가 남녀의 조화까지를 아우르는 에코페미니즘운동, 환경 및 자주공동체운동을 동시에 추구하는 아나키즘운동 등이 그 주류를 이룬다. 서구문명 붕괴의 대안으로 노장철학 등 동양사상을 내세우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또한 기존 서구과학의 단선적 발전법칙을 회의하면서 동양사상과의 조화 등 다양한 가능성을 끌어들이기 위한 신과학운동도 서구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세기말 전통으로 돌아갈 것인가, 퇴영으로 물러설 것인가, 아니면 과학기술문명과 함께 계속 질주할 것인가. 지금으로선 예단은 곤란하다고 지성들은 말한다.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따라 자란다」는 독일 시인 횔덜린의 말을 새겨보자고. 이를테면 디지털의 출현과 정보사회의 가속화도 세기말의 양상이면서 한편으로는 신세기의 여명일 수 있지 않으냐고. 〈이광표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